경북 봉화가 고향인 김홍대 전 법제처장은 `산삼박사`로 불린다. 봉화초등학교를 다니다 대구 동인초등학교로 전학온 뒤 대구중학교와 대구고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71년 행정고시 10회에 합격해 법제처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재무부 조세정책과장, 법제처 법제관, 법제처 법제조정실장을 거쳐 1998~2000년까지 제21대 법제처장을 역임했다. 퇴직후 그는 고려대학교, 세명대학교 초빙교수, 그리고 동양대학교 부총장으로 일하며 산삼연구에 관한 책 `한국의 산삼`을 펴냈다. 그게 2005년말의 일이다. 그를 만나 고향에 어린 추억, 공무원으로 일할 때 에피소드, 그리고 이제는 산삼박사로 불리며 `인생 이모작`을 짓고 있는 최근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산삼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국의 `본초강목`, 우리나라 `동의보감`을 보면 모두 산삼꽃이 붉은 색이고, 가을이 지나 열매를 맺는다고 돼 있으나, 실제 산삼꽃은 흰색이고, 이르면 이미 7월에 열매가 떨어집니다. 또 산삼잎이 첫해는 한 잎, 3년째 두 잎, 5년째 5개 잎으로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사실은 처음부터 세잎으로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산삼총서라 할만한 `한국의 산삼`이란 책을 쓴 저자답게 김 소장은 일반인들이나 한의사들마저 잘못 알고 있는 얘기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30여년간 재무부, 법제처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산삼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 전국의 산을 뒤지며 산삼을 연구하고, 우리의`동의보감`은 물론 중국의`신농본초경``본초강목`등 의서와 산삼에 관한 동서양의 논문과 서적을 섭렵해 이론적 연구도 아울렀다. 지난 2002년부터 산삼밭도 확보해 산삼연구는 물론 판매·보급에도 나섰다. 그가 이렇듯 산삼연구로 인생이모작에 나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릴때 꿈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양조장을 경영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세무서에 많이 시달려서인지 세무공무원을 하길 바랬습니다. 저는 혼자 속으로 `도지사는 해야된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고려대 법대를 진학했고, 행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세무서장은 아니지만 봉화에서는 처음으로 차관급 공직을 지냈으니 꿈은 이룬 셈입니다.

-30여년의 공직생활에서도 `산삼 사무관`으로 불렸다던데요.

법제처와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산삼과 약초에 대한 관심은 많았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휴가철에 바닷가를 가보지 못할 정도였죠. 저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와 산속을 헤매며 보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었죠.

-법제처장까지 지내며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범하던 해인 1998년, 제가 법제처 출신 내부 승진 케이스로서 최초의 법제처장이 됐습니다. 처장이 된 뒤 둘러보니 대한민국 법제 50년에 대한 역사기록이 없고, 그런 일을 하는 부서자체가 없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해방직후부터 그때까지 50년만에 법제 역사를 기록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부조직법 제정부터 시작해서 어떤 부처가 생기고 없어졌는 지 일일이 조사해야 했죠. 사업예산도, 복지후생비도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 국무총리이던 김종필 씨에게 고생하는 법제처 직원들을 총리 공관에 초청해 위로해 달라고 요청했죠. 김 총리는 흔쾌히 수락했고, 서기관 이상 법제관을 모두 초청해 와인파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사기를 북돋아가면서 무일푼으로 2천페이지 짜리 법제사를 2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쇄비만 10억원이상 들어간 대역사였고, 이게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생각납니다.

-퇴직후 산삼박사로 알려질 만큼 산삼연구에 심취했는 데,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 고향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으로 송이와 산삼이 유명한 청정지역입니다. 해발1200m의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는 그림같은 곳이죠. 저는 방학때도 고향에 내려가 심마니 아저씨들에게 밤새 산삼에 대한 얘기를 듣곤 했습니다. 청량산 수십길 벼랑끝에 핀 산삼열매를 보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해 고생한 이야기, 산삼을 훔쳐먹은 동네청년의 몸에서 며칠간 산삼향기가 나더라는 얘기 등 숱한 사연들을 들었죠. 참고로 산삼을 제일 찾기 좋은 계절은 7월 초순 열매가 붉게 익을 때인 데, 산삼딸 (산삼열매를 부르는 말)이 붉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온천지가 붉게 보이고, 향기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경험때문에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 공무원 생활 그만두고 산삼에 대한 완벽한 책을 쓰야 겠다.”고 생각해 4년여의 집필끝에 지난 2005년 말 550쪽의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산삼에 대한 학술연구는 어떻게 했나요.

2005년에 경희대 학장에게 양해를 얻어 도서관을 전부 다 뒤졌습니다. 산삼에 관해서는 박사학위 논문 하나 없었고, 석사 논문으로 `산양삼의 재배방법과 실태`에 관한 논문 1건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브레크만이란 소련 생물학자가 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45년을 연구한 끝에 사슴들이 병이 들기만 하면 뜯어먹는 풀이 있는 데, 그 풀이 오가피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연구해 어댑토겐 학설을 내놨습니다. 오가피과인 산삼은 인체가 각종 질병으로부터 침입을 받았을 때 평소의 가장 건강한 상태로 복원시켜주는 생체항상성 기능을 가진다는 내용이 바로 어댑토겐(Adaptogen:적응소)학설입니다.

-산삼이 만병통치약, 또는 진시황이 구하려 했던 불로초란 주장이 있는 데, 어떻게 보십니까.

산삼은 33가지 사포닌 성분중 트리올계 사포닌은 흥분작용을, 디올계 사포닌은 진정작용을 하는 상반된 성질의 약성을 갖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혈당이나 혈압이 비정상적인 경우 정상적으로 복원시켜주는 신비한 약효가 인정되고 있어 `만병통치의 효능`이란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산삼도 여러 종류가 있는 데, 어떻게 구별합니까.

산삼은 천종삼과 지종삼, 그리고 인종삼으로 구분됩니다. 100년이상 자연상태에서 자란 가장 이상적인 삼이 천종삼이며, 인삼씨를 새가 먹고, 배설해 산에서 자란 삼이 지종삼입니다. 인종삼은 천종삼이나 지종삼, 인종삼 씨앗을 채취해 그 씨앗을 사람이 산림속에 뿌려 키운 것을 말합니다. 인종삼을 흔히 산양삼, 또는 장뇌삼이라고 합니다.

- 산삼 종류별로 약효의 차이가 어떻게 납니까.

산삼은 토양 환경 배수 온도 습도 지형에 따라 약효에 차이가 납니다. 장뇌삼도 산삼 씨앗을 심어서 키운 씨장뇌가 가장 좋고, 밭에서 키워 묘삼을 이식한 밭장뇌는 약효가 상당히 떨어집니다. 그러나 인종삼인 장뇌삼 1대는 인삼보다 탁월한 약효가 있고, 대수가 5대에 이르면 천종삼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종삼도 5대에 이르면 천종삼이 된다고 합니다.

-천종산삼을 캤다는 보도가 가끔 나는 데, 진짜인지 또는 얼마나 묵은 것인 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감정은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모두 거절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가 만든 산삼연구소가 산삼 감정을 권위있게 하는 기관이 돼야 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천종산삼의 감정은 뇌두 길이나 약통둘레, 세근, 주름, 잎의 크기, 가지수 등을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종 3대, 자연삼 2대 등으로 감정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시중에서 천종산삼이라고 몇천만원을 주고 사는 데, 대부분 산양산삼 2대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저는 산삼 한뿌리에 10만원 이상이면 사먹지 말라고 권합니다.

-장뇌삼 유통질서도 그리 좋지는 않다고요

장뇌삼의 80~90%는 중국삼인 데, 10년전 부터 씨앗이 들어와서 우리 산야를 덮고 있습니다. 우리의 천종삼을 닮아서 모양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약을 쳐서 키운 삼이어서 문제가 많습니다. 농약은 아들삼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또 중국삼은 조직자체의 치밀성이 부족해 잔유물이 5분내에 없어지기 때문에 30분이상 씹어도 잔유물이 남는 국산 장뇌삼과는 쉽게 구분이 가능합니다. 또 년수를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8년생 장뇌삼을 키워 싸게 팔고 있는 데, 5년~7년짜리 장뇌삼을 15년산이라고 속여 비싸게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99% 15년짜리 장뇌삼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산삼의 표준화가 시급합니다.

-산삼을 직접 키워서 판매도 하신다고요.

연구를 위해서, 그리고 산삼의 대중화를 위해서 지난 2002년부터 장뇌삼을 키우고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 근처에 7만평 정도 산삼밭을 확보해 키우고 있는 데, 내년 3-4월부터는 인종삼 2대로서 7년산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특히 산삼 유통질서가 혼탁하고, 산삼 품질을 믿을 수 없다는 분이 많아서 공직생활을 오래 한 제 이름을 걸고 `김홍대 산삼`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믿을 수 있는 산삼을 생산해 국민들에게 판매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최근 김홍대 산삼연구소(☎02-379-4648)를 설립했습니다. 여기서 산삼의 효능과 성분에 대한 연구는 물론 산삼 재배에 관한 교육연구를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한국의 소나무에 대한 연구를 해 조만간 이에 관한 책을 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장뇌삼을 키우는 농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껍질을 벗기는 개갑을 하지 말고 장육이 붙은 채 씨장뇌로 심어야 자연삼과 같은 효능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갑하고, 밭에 심었다가 다시 옮겨 심게 되면 산삼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온전한 효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산삼을 키울 분은 저와 상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산을 진짜 산삼으로 뒤덮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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