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와 실천적 질문

`한국문학의 위기가 사실은 비평의 위기`라는 성찰적 진단을 바탕으로 출발한 비평지성 공동체인 `해석과 판단`이 2000년대 한국문학의 현장에 대한 탐색을 다룬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1집), 디지털을 매개로 한 문학과 문화의 만남에 대해서 살펴본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2집)에 이어 `지역`이라는 조건이 갖는 함의와 그 실체에 대한 물음에 천착한 3집 `지역이라는 아포리아`를 묶어 내놓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지역문학론과 지역문화론이 나왔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론이 `중앙`과 이에 종속된 `지역`이라는 낡은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화와 전 지구화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도식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오늘날 지역의 삶과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는 이론과 실천의 접점에서 기존 연구들이 방기해왔던 구체적 삶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여러 문학·문화 텍스트를 토대로 살펴봤으며 그 결과물을 `지역이라는 아포리아`에 담아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짜여 있다. 부산과 지역의 관계를 문학과 문화 전반을 대상으로 해 살펴본 제1부 `부산-지역, 문학을 생각한다`와 제2부 `부산-지역, 문화를 생각한다`, 그리고 지역담론에서부터 시작해 공간과 주체, 자본의 재인식을 드러낸 제3부 `지역-장소를 생각한다`로 구성돼 있다.

전성욱의 `부재하는 것의 공포, 지역이라는 유령`은 중앙과 지역이라는 이분법에 구속된 지역 담론의 허구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글이다. 지배하는 `중앙`과 지배당하는 `지역`이라는 구도는 가해와 피해라는 쌍형상화의 도식을 통해 희생자 의식에 사로잡힌 `지역`을 탄생시킨다. 그럼에도 `지역`이라는 심상지리의 피해와 소외는 엄연한 현실적 상황이다. 전성욱은 이런 생각을 따라 진정 `지역`의 나은 삶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으로 담론화된 지역론의 구도를 벗어나 삶의 구체성과 사건의 특이성을 살피는 것을 변혁을 위한 실천의 중핵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은미의 `시/공간과 조우하는 몇 가지 방법`은 정신분석학적 주체에게 `원초적 장면`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특정 장소에도 현재 상태의 근원이라 할 `원초적 순간`이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공간을 사유하는 주체에게, 공간의 `원초적 순간`을 대면하는 일은, 공동체 터전의 실존적 탐색이라는, `잔인한 인식`의 순간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박훈하의 `나는 도시에 산다`와 몇몇 영화 작품을 예로 들어, `원초적 범죄`로서의 `시공간`과 주체가 의미 있게 만나는 방식들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열두 편의 글들은 지난 한 해 동안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의 치열한 논쟁의 산물이다. 지역이란 무엇인가, 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지역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며 또한 할 수 있는가, 라는 실천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지역`이라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아포리아에 도전한 글들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학과 문화의 새로운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산지니 刊, 308페이지,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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