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논설위원·문화중고 총동창회장
어제와 오늘은 분명 별 날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제는 간 날이고 오늘은 새롭게 출발하는 날이다. 강물 역시 오늘도 흐르지만 어제 흐른 물과는 같지 않다.

새로운 세기는 20세기와 다를 것을 기대했건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갈등과 분쟁, 분열로 보내었다. 언어는 그 시대의 거울이다.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한해를 정리한 사자성어를 보면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 `밀운불우(密雲不雨)` `자기기인(自欺欺人)` `호질기의(護疾忌醫)` 처럼 모두가 갈등과 분쟁에 뿌리를 둔 어두운 말들이다.

올해 사자성어 `방기곡경(旁岐曲徑)`은 “바른길을 쫓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라도 억지를 부렸다”로 풀이할 수 있어 갈등과 분쟁 대립으로 보낸 10년이다.

지난해 12월 31일에야 여당 단독으로 통과된 새해 예산이나 4대 강과 세종시에 함몰된 나라로 비칠 만큼 지난해 역시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지만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긍지를 가질만한 일, 여운이 긴 감동도 있었고 어느 사이 세계 경제 10위 국가로 올라섰다.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물신(物神)에 지배받는 우리들의 처지를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야구 대표팀의 북경 올림픽 우승이나 김연아 정상차지 장면은 열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감동이다.

극동(極東)은 멀고먼 아시아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이 끝난 1990년까지 무려 127억 달러(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70조원)를 원조 받았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서 후발과 후진의 멍에를 벗어 버렸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선두에 섰지만 그래도 중국과 우리나라뿐이다.

연전 어느 미국 경제학자는 지난 세기에 일어난 두 가지 기적을 꼽으라면 정치적으로는 무려 2천 년간이나 나라 없이 떠돌았던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웠던 일이고 경제적으로는 최빈국 코리아가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사실을 들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루카스도 한국 경제발전상을 두고 `기적의 창출`이라고 극찬했었다. 골드만삭스는 남북한이 하나로 발전할 경우 2050년쯤이면 한국경제규모가 일본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 벅찰 미래의 기쁨이 아닌가.

이제는 다가올 10년을 걱정해야 할 시기다. 새 정부를 이끄는 하토야마 일본총리는 탈아(脫亞)가 근간이 된 친미정책에서 아시아로 방향을 또 한 번 크게 틀고 있다.

일본 중국의 부상은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우리에겐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많은 인구· 좁은 땅”에 강대국에 끼어 있다. 왜구는 항상 지진이 없는 땅을 노리고 있고 G2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은 지금 `팍스 차이나`의 꿈에 부풀어 거들먹거리고 있다. 이들을 넘어서야 3국의 틈새에서 살아남는데 그렇다면 새해는 일등 상품을 더 만들고 생각과 이념이 다른 사람과도 소통해야 한다.

4대 강· 세종시· 지방 선거를 슬기롭게 치르고 G20회의도 잘 마무리해서 탄력이 붙었을 때 국격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남북으로 좌우로 분열되고 찢어질 여유가 없다.

북한은 매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민족은 하나고 영원히 흐르기 때문이다. 분노· 절망· 후회스러운 것들을 세월에 묻고 새롭게 출발해보자. 새해가 없다면 지난날처럼 또 허둥대고 시간만 보내었을 것.

꿈과 희망을 놓친 사람은 허깨비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2010년을 국가가치를 높이는 해` `녹색 성장의 해` 등 갖가지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나 정부 역시 소통과 화해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새해에 들어서도 국제사회는 경제위기 이후의 세계판도를 놓고 무서운 경쟁을 벌일 것이니 새해가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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