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 / 로타리코리아 부위원장·객원 논설위원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이 새롭다”란 옛말이 참말처럼 느껴지는 게 자전거 바람이다.

이 땅에 들어온 외래교통수단의 1호는 자전거,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1882년 미국 해군대위가 갖고 들어왔다. 당시 고종 황제는 자전거 시범을 보고 “땅에서 받쳐주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달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을 만큼 놀라워했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도시마다 넘쳐나는 자동차의 비대증은 현대사회의 대표적 공해로, 또 보행자와 운전자가 서로를 겨누는 원성꺼리로 등장했다.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씩 꼼짝을 못하는 태국 방콕 교통경찰관의 필수품은 아기 탯줄을 자르는 가위다. 차 속에서 아기를 받는 경찰관이 있다고 한다.

허구한 날 도로를 넓혀도 교통 혼잡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까. 일본은 그 지겹던 자가용 시대에서 조금씩 벗어나 예전처럼 자전거가 달리는 모습을 어디서나 많이 볼 수 있다.

도쿄에 사는 20대 젊은이들은 `돈을 어디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차를 사겠다는 응답은 16위에 그쳤다. 실제 20대의 자가용 보유율은 1993년의 64.4%에서 2005년 54.1%로 떨어졌다.

전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7%가 자동차가 원흉이다.

1999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Slow city)`운동처럼 우리도 가족과 함께 흙냄새· 꽃냄새 맡으면서 산과 들을 걸어보면 새로운 힘이 몸속에서 치솟아 올라올 것 같다.

전남 장흥의 슬로시티 거리는 속도에 시달렸던 사람에게는 너무나 이채로운 거리다. 이제 차를 버리고 은륜을 타고 걸을 곳을 찾는 것은 속도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이기도 하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속도에 매진했던 지친 삶을 내려놓고 새 삶을 음미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여서 더 흥미롭다.

한국사회도 올해 들어서부터 자전거 바람이 불어 자전거 전용로를 내는 지자체가 여기저기 생겼다. 형산강이나 흥해 곡강천 자전거 전용도로가 어떻게 생길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아직은 그 바람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자전거가 건강에도 개인적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로움이 있어 한없이 좋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별을 살리는데도 한몫하는 공감대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덴마크엔 전국 도로의 75%가 자전거 전용도로다.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혀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지하철 역마다 보관소는 물론 이용자를 위한 탈의실·샤워장까지 둘 정도다.

몇 년 전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이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를 입후보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물론 자전거 타는 유권자 75%의 지지를 얻어 의회에 무난히 입성했다.

프랑스 파리 역시 2007년 7월부터 `자전거 혁명`을 일으켰다. `벨로(자전거)`와 `리베르테(자유)`를 합친 `벨리브`서비스를 시작했다.

파리 시내에 마련된 무인 자전거 대여소 750군데에 자전거 1만여 대를 두고 시민과 관광객에게 빌려준다. 누군 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까운 대여소에 가져다주면 된다. 당시 1년 이용권이 29유로이니 무료나 다름없었으니 지금은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독일 북부 교육도시 뮌스터 도심을 자동차로 통과하려면 30km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달리는 자전거 1m 반경에 들면 자동차는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차 앞에 자전거가 얼씬거리면 운전자가 손을 내밀어 먼저 가라고 한다. 자전거 신호 대기선이 자동차 대기선보다 3m 앞에 마련돼 있어 안전한 출발을 돕는다. 뮌스터에는 인구 28만에 자전거가 50만대여서 승용차가 가장 불편한 교통수단이다.

새해에는 자전거와 벗하며 건강해지려는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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