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 문화중고 총동문회장
함석헌 선생은 “말은 자신의 몸을 닦아내듯 가려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을 닦는다는 것은 말씀을 닦는 것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논어(語)에서는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 해서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라도 인간이 가진 혀의 빠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거둬들일 수 없다. 생각 없이 불쑥 던지는 말은 총을 마구 난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지도자의 말일수록 가다듬고 가다듬어야 여러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연말 저질 프로그램을 타고 난비하는 신조어와 저속한 말은 어떤 관계가 성립될까.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속한 뜻이 담겨 있고 유행을 많이 탄다는 공통점만은 같다.

요즘 `꿀벅지`라는 신조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두드리면 무려 1천300여 개의 관련기사가 뜬다. 올해 대중문화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신조어 `꿀벅지`는 사이트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긴 하지만 `꿀을 발라 놓은 것처럼 달콤하게 보이는 허벅지`라 해석할 수 있고 선정적인 사이트에서 주로 기원 됐을 것.

최근 몇 년 사이 `S라인-V라인-쇄골미인-꿀벅지`로 이어진 신조어는 어김없이 인터넷사이트에서 기원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통 소비 진화과정 역시 인터넷이나 대중매체 여성출연자들을 두고 묘사한 젊은 세대들의 언어생활 일면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저속하다.

말이 썩고 있다. 인터넷이나 케이블 텔레비전이 아닌 지상파 3사 프로그램에서마저 막말과 반말은 기본이 된 지 오래된다. 초등학교 중·고교 학생들과 연예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막말이나 저속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막말이 방송과 인터넷을 점령했다는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는 세상이다. 정치 계절이 되면 더 민망하다. 더욱이 막말이 뜨면 행동도 따라가 우리 아이들이 그 표정까지 흉내 낸다.

이런 흐름을 이끄는 데는 대중의 총아 TV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인터넷이 출발점이다. 지난 2003년 모 방송이 제작 방영한 드라마는 패륜 엽기가 기본이다. 막말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할 만큼 대사에 욕설이 등장했다. 그해 또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에서는 난투극· 육박전· 온 가족의 불륜이 소재가 되는 등 진화에 진화를 해서 결국은 본처와 연인, 두 여자와 한집에 사는 기막힌 막장 드라마와 막말 시대를 열었다.

일부 교양 예능 프로그램은 더 심할 때가 많다. 출연자들은 무슨 말이라도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내야 인기를 얻는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고 보니 우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 같다. 일상의 언어처럼 표현되고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차단 방법이 없다.

더욱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나 방통심의위원회 기준은 너무 헐겁다. 시청률과 경쟁하는 방송사는 말할 것 없을뿐더러 심의 기준이 욕설 정도는 어느 정도 넘기는 것 같다. 이러니 막말 차단엔 역부족일 수밖에.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면 해명과 자체 징계로 수위가 조절돼 피해 가는 모양이다. 지난 10월 영국 BBC방송은 오후 9시 이후에 방송되는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은 욕설이나 비속어와 같은 막말은 방송심의 전문 직원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아 사실상 막말 사용을 막고 있다.

언론이 자유스럽기로 이름난 독일의 경우도 `청소년 유해 환경`만큼은 엄격해서 영화나 TV프로그램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전문직이 심사를 하는데 위반하면 최고 50만 유로의 벌금을 물게 된다.

미국은 지난 2002년부터 유해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폭력장면 방지용 칩을 13인치 이상 TV에 달도록 하고 시청자들로부터 불만을 접수, 경고장을 발송하는 한편 때로는 엄청난 벌금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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