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마친 고3들, 요즘 자유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 막바지 대입 전략으로 마음 부담은 크겠지만, 물리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많다 보니 괜한 고민들을 한다. 내 딸아이와 친구들도 그런 상황이다. 각자 운전을 배운다, 헬스클럽을 다닌다, 영어 학원을 다닌다 해도 늦은 밤까지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여유만만이다.

성정이 재바른 친구들은 벌써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도 했단다. 주로 패스트푸드점이나 삼겹살집, 치킨집에서 서빙을 한단다. 호기심이 생긴 딸아이도 물어온다. 동네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생 구한다는데…. 말끝을 흐리는 품새가 자신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완곡한 표현일 게다. 작년에 이런 과정을 먼저 겪은 친구가 생각나 나는 속으로 웃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던 친구딸은 사흘을 견디지 못했다. 난생 처음 신어보는 하이힐에다 정장차림으로 대여섯 시간동안 고객을 상대한다는 건 어려운 경험 없던 열아홉에겐 무리였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치고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한참을 거슬러 내 시절은 어떠했는가? 입시를 마친 그 겨울, 한 옷가게에서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학생이라면 대개 용돈이 궁할 시절이었다. 그런 딸을 위해 오지랖 넓은 엄마가 손수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궁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낭만 같은 걸 기대했던 나는 첫날부터 그런 생각을 접어야했다. 사회는 냉혹했고,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인 나 말고 정식 여직원이 둘 있었다. 그 둘은 미묘한 경쟁 관계였다. 아니, 한쪽이 일방적으로 사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신상품 가격을 책정하고, 할인율을 정할 때 사장만큼 입김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루 매출 장부를 기입 검토한다는데 대한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활기차고 당찰수록 상대적으로 일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나머지 여직원은 주눅이 들었다. 덩달아 감정이입이 된 나도 침체되어 있었다. 흐트러진 옷가지를 제 때 개켜놓지 못해서 눈치 봐야 했고, 그 많은 종류의 옷에 붙인, 암호로 새겨진 일본식 가격표를 해독하지 못해 맘 졸여야 했다. 매출이 신통찮아도, 재고 현황 아귀가 맞지 않아도 사장을 대신한 그녀는 주눅녀에게 짜증을 냈다. 곁에 있는 나는 덩달아 그 분노를 감내해야 했다. 어쩌다 그건 아니고, 라는 반발이 주눅녀에게서 나오면 그녀는 항상 이렇게 되받아쳤다. - 너, 아버지 없다고 나 무시하니?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제 아버지의 부재를 타인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인정받지 못한 스물아홉의 주눅녀와 사회를 미처 알지 못한 열아홉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녀도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토록 힘들었으면서 왜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했을까? 그건 절실함의 문제였다. 나남할 것 없이 풍족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한 번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어 달 남짓한 아르바이트가 끝났을 때까지도 신뢰녀의 행동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훨씬 뒤 나는 그 답을 니콜 파브르의 `상처받은 아이들`(동문선, 2003)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얻을 수 있었다. `죽은 나무들은 버려야지. 살아 있는 나무만 필요해. 살아 있는 나무들로 모든 사람을 꼼짝 못하게 가둘 거예요.`(87쪽). 아버지 얼굴을 못보고 자랐다는 그녀도 책 속의 파스칼처럼 아버지 같은 무가치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자신을 단련시켰던 것이다.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 싹수가 노란 모든 것들은 가지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끝마다 내뱉던 아버지 부재에 대한 절규는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왜곡된 정서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딸아이의 아르바이트에 관한 낭만적 호기심은 잠시 미루는 게 좋겠다고 말할 참이다. 절실해도 상처받기 쉬운 욕망은 절실하지 않을 때 실패를 담보하기 쉬우므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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