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의 춤`은 송일곤 감독의 92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 100여 년 전, 그 쿠바에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를 거쳐 바람처럼 흘러간 300여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4년 뒤면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억세게 살았다.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치고, 상해 임시정부 김구선생께 독립자금을 보내며, 체 게바라의 혁명에도 동참하면서. 그러나 그 누구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09년 현재, 그들의 후예들은 꼬레아노(한인)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은 채 여전히 그곳에서 태양처럼 뜨겁게 살고 있다. 정열의 라틴 댄스와 황홀한 라틴 뮤직, 혁명과 낭만이 가득한 쿠바! 그 아름다운 쿠바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한인들의 뭉클한 사연과, 과거와 현재의 삶의 자취가 낭만적인 춤과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일흔이 넘은 세실리오는 에네껜 농장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결혼한 뒤에도 다른 여자와 종종 로맨스에 빠졌다는 그의 애창곡은 `나쁜 남자`다.

알리시아는 여성을 그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쿠바의 유명한 화가다. 그는 자신의 평생 주제가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디아날리스는 발레학교 강사다. 키가 작아 국립발레단 정식 단원이 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발레를 사랑한다. 쿠바 토속 종교 사제이기도 한 디모테오는 매일 인류를 위해 기도한다.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시간의 춤`은 크게 2부로 구성됐다. 전반부에 이 하나의 목소리로 들려지는 건 주로 이국적인 삶의 낭만이다. 춤과 노래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결혼한 사실을 까먹어서 또 결혼했다는 능청스런 할아버지도 나오고, 쿠바 혁명을 위해 게릴라 활동을 한 한인도 보여준다.

반면, 후반부 장현성의 내레이션은 이 주민의 그리움을 담는다.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누군가는 가족의 무덤가에 꽃을 놓고 흐느끼고, 누군가는 검버섯 핀 손으로 몇 십년 전의 연애편지를 뒤적인다.

낯선 땅으로 사실상 축출됐던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100년 전 `상자 안의 여자`가 어떻게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맘껏 춤출 수 있는가. 망각이 아니라 기억의 힘이다. `죽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그들을 춤추게 했다고 송일곤 감독은 믿는다. 자신의 남편을 어머니의 새 남편이라고 착각하는 할머니를 딸은 `자신의 감성이자 인식이자 사랑이자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담아오는 여행은 많지 않다. 역사의 생채기는 여전히 외상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의 춤`은 지구 반대편의 `기적`을 더 보고 싶어한다.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대를 이어가면서 300명의 조선인의 후예들은 그 땅의 피를 이어받고, 그곳의 문화를 익히고, 그 땅의 정기를 받아 그 땅의 사람들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그들에게 흐르는 조선인의 피가 그들의 외모에 조선 땅의 흔적을 남기긴 했어도 그들이 보여주는 기질과 그 성향은 분명 쿠바인이었다. 영화는 그들의 인생 여정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교하게 편집해 보여주면서,그들이 그들의 조부모, 부모 그리고 자신들의 아들과 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거쳐 그 땅과 추어온 시간의 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