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봄, 여름, 가을 지나 계절은 벌써 겨울의 문턱입니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과 마침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벌거숭이 나무를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맞이하게 될 우리들의 겨울을 예감합니다. 지금쯤 겨울을 준비하는 경주의 생명들…. 이를테면 산과 들판, 강과 바다와 땅속의 많은 미생물, 그리고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 안부를 전합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딱정벌레여! 몇 년 전, 경주시민들의 압도적인 성원 속에 방폐장이 경주로 결정되었을 때,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중 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서는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흩어져 사는 많은 생태계와 생명체들은 쓸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선 막대한 예산 지원과 개발의 바람으로 전국의 부동산 업자들이 밀려들었고 땅값은 부르는 것이 값이었지요. 그 속에서 사람들의 민심은 메말랐고, 경주의 산천은 멍이 들었으며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습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장수하늘소여! 알다시피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의 역사문화도시입니다. 또한 경주는 도시 전체가 숲으로 이루어져서 하나의 공원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야말로 청정지역입니다. 그런데 지금 경주에는 중 저준위 방폐장 공사가 한창입니다.

경주의 생명들이여! 가슴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중 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서는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지역은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지역입니다. 앞에는 동해의 바다가 푸르게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 울창한 숲들이 천년고도 경주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곳의 계곡은 사시사철 물줄기가 흘러 경주시민과 자연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어머니의 자궁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경주에 사는 할미꽃이여! 경주는 방폐장 유치로 지원금 3천억원과 매년 100억원을 지원받게 되지만 지금 경주시는 중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처분장 안전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경주시의회는 지난 8월 경주역 광장에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방폐장 공사의 중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여! 당신들은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고 함께 살아야 길벗입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남산의 솔숲이여! 방폐장 건설을 위해 지금까지 4차례 안전성 검사를 했는데 여태껏 외부에 공개하지 않다가 최근에 한 야당국회의원이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13개 시추공 중 3개를 제외하고는 매우 불량한 암반 상태를 보여주고 있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시추공에서 균열과 파쇄대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숲들이여! 속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니 속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공개된 부지조사 보고서를 보면 경주 중 저준위 방폐장 일대의 부지는 안전한 지역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대60년을 가동하는 원자력 발전소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최소한 300년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합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지하수가 풍부한 이곳에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지하수가 동굴 안으로 스며들 수 있고, 핵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을 부식시켜서 안에 담겨 있는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누출될 수 있습니다. 또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인근 땅속과 바다 속 어떤 경로로 퍼질 수 있을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많은 위험들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경주에 살고 있는 벚꽃들이여! 해당 부지는 지하수위가 높고 공사를 하는 지금도 하루 300~650t 가량의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반경 8km 안에는 활성단층도 있어서 지진 가능성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공단과 한수원, 지경부는 활성단층은 인정하지만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다면서 원자력 부지 기준을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사에 착수하고 땅을 파보니 예상과 달랐습니다. 단열과 파쇄대가 예상보다 많았고, 불량한 암반이 처음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공사는 지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안전에 대한 정말 조사를 투명성 있게 공개함으로 여러 가지 의혹과 불신을 해소 해야 합니다. (계속)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