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하포항시의원
지금은 다 자라 대학생이 되어 있는 두 딸이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첫 번째 영월 방문은 한 십 년 남짓 되어 기억조차 새삼스러운 제법 오래된 여행의 단상을 꺼내는 셈이다. 올해는 무더위의 극성이 다소 주춤했지만 그해 여름 가족 휴가여행 겸 큰딸의 역사탐방 방학과제를 위해 강원도 영월을 향해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 비경을 간직한 동강은 강원도 내륙에 위치한 정선에서 시작되고 있다. 한반도의 등뼈로 불리우는 태백산맥에는 높고 가파른 산으로 꽉 들어차 있어 청옥산, 석병산,두리봉산 같은 팔구백미터의 산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며, 이처럼 수많은 산들에서 흘러내린 물이 오대천, 용탄천, 골지천, 임계천 같은 작은 내를 이루어 저마다 흐르다가 마침내 하나로 어우러져 소양강이 되는데 이 강은 남한강의 상류인 동강에 이른다.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무형의 가치가 서린 동강을 댐으로 막아 한강 상수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1997년 이후 격렬한 논쟁으로 전국의 이슈가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전국 최고의 체험관광지가 되었지만 동강댐 계획안은 지금은 백지화되었지만 참으로 근시안적이고도 위험한 단편적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처럼 댐 건설이라는 개발의 논리로 현재의 교훈을 일깨운 현장이라면 단종이 머물고 잠들어 있는 청령포와 장릉은 과거의 교훈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곳이다. 오천 년 긴 세월동안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임금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또 사라져 갔지만 조선조 6대 임금인 단종만큼 안타깝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임금은 없었다. 세종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은 병약하여 많은 후사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세자빈 권씨마저 몸이 약해 외아들 홍위(훗날 단종)를 낳은 지 3일 만에 아들을 혜빈 양씨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고 만다. 따라서 홍위는 세종의 후궁이자 서조모인 혜빈양씨의 손에서 자랐다.

이렇게 양육된 홍위는 세종에 의해 1448년 세손에 책봉된다. 할아버지 세종은 병약한 장남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성삼문 등에게 각별하게 세손의 앞날을 당부했다. 야심이 크고 호방한 둘째아들 수양을 비롯한 혈기 왕성한 아들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세종의 염려처럼 문종이 2년 3개월 만에 어린 세자를 부탁한다는 고명을 남기고 타계하자 이때 홍위의 나이 불과 12세였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단종은 수렴청정할 후비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조부인 세종의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명석했던 단종은 조정의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성삼문, 박팽년, 김종서, 황보인 등의 대신들이 단종을 보필하고 있었으나 왕권이 유명무실해지고 신권이 팽배해진다는 이유로 1453년 10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안평대군을 비롯한 이른바 단종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만다. 정치적인 실권이 완전히 수양대군에 의해 장악되고 금성대군을 비롯한 종친, 신하, 궁인들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시키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단종은 왕위를 내놓고 만다.

이후 성삼문 등에 의해 단종복위 사건이 터지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고 다시 서인으로 강봉된지 한 달 뒤에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과 공생 화득의 교살에 의해 17세의 어린 나이로 사사되어 한 편의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지금은 개발보다 보존의 결단으로 동강의 비경을 간직하고 단종과 김삿갓의 숨결 살아 숨 쉬는 영월, 자연과 역사를 함께 잘 포장하고 축제와 체험을 통해 무엇인가 큰 질문을 던져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월의 모습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역동적인 변화의 발원지 같았다. 동강과 단종을 만나본 영월의 향기와 여운이 그해 여름 무더위처럼 식지 않는 사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포항도 아직도 끝나지 않는 영월의 여행처럼 자연과 역사를 묶을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은 없는지 한 번쯤 심오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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