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정리 세 번째로 신라유적의 순서이다. 신라유적은 크게 남산 유적과 그 외 지역으로 나누어 정리하려 한다. 천년고도 경주는 전체가 유적으로 이뤄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소개하도록 하려 한다.

신라-당군의 전쟁시기에 조성된 `안압지`

안압지는 경주박물관 29기 수업이 시작되고 처음 답사를 간 곳이었다. 평소에도 경주를 수없이 찾지만, 안압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런 문외한에게 답사를 통해 설명을 들으며 새롭게 다가온 안압지의 본 모습은 큰 감동이었다. 지금의 안압지(雁鴨池)는 674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하고, 당군과의 막바지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조성됐다. 신라시대에는 월지(月池)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는데, 신라의 패망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 묵객들이 `갈대와 부평초가 무성하고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다닌다.`해서 안압지로 불리게 됐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삼국통일 후 전쟁의 열기를 완화하기 위해 그 당시의 잉여 노동력인 백제와 고구려인들을 많이 동원하였다. 누각이 늘어선 서쪽과 남쪽의 직선 형태는 고구려의 동쪽과 북쪽의 40여 개로 조성된 구불구불한 호안은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연못 속에는 불로초가 자란다는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영주. 방장. 봉래 세 개의 인공 섬을 만들어 입수구에서 들어오는 물길에 흐름을 만들어 분산시켰고, 호안의 높이에 차이를 두어 북쪽과 동쪽이 낮은 언덕처럼 보이는데 이는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무산십이봉`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몽고 침략군에 의해 사라진 장엄한 `황룡사`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가장 큰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던 답사지가 황룡사지이다. 그 장대한 크기의 절과 목조 건축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9층 목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면 얼마나 장엄할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이다.

황룡사는 사찰 경내만 총 3만 평이 이르는데 진흥왕 14년(553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담장을 쌓는데만 17년이 걸리고, 장육존상을 22년 후인 574년, 금당을 32년 후인 584년, 그리고 92년 후인 645년 선덕여왕 대에 이르러서야 9층 목탑을 완공하였으니 장장 1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4대 왕을 거치면서 소요된 것이다.

7세에 왕위에 오른 진흥왕은 21세가 되던 553년에 월성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 하였는데 그 터에 황룡이 나타나자 사찰을 짓게 하여 황룡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선덕여왕 때에 분황사에서 머물던 자장 법사의 권유로 9층 탑을 건립하게 되는데, 당시 신라인의 기술로는 건립이 어려워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초청해 신라의 장인 200여 명과 함께 완공하게 된다. 전체 높이가 현대 건물 20층 높이와 맞먹는 80여m의 9층 목탑은 완성된 지 50년 뒤인 효소왕 7년(698년)에 벼락에 맞아 불탄 이후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듭 하며 593년간을 이어 내려오다가 고려 고종 25년(1238년) 겨울 몽고 침략군에 의해 가람 전체가 불타는 참화를 겪고 나서는 중수되지 못하였다.

삼국시대 조형미 담긴 `감은사지 3층 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신문사에 몸을 담기 훨씬 전부터 문무대왕수중릉이 있는 감포 바닷가로 여행을 할 때부터 가끔 들리던 곳으로 개인적인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감은사지에는 중문의 북쪽이자 금당 앞 좌우에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 2기가 있다. 국보 제112호인 동서삼층석탑은 제일 윗부분인 찰주까지의 높이가 13m로 국내의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큰 탑이다.

감은 사지 삼층석탑은 신라와 백제의 삼국시대 말기 석탑 양식이 하나로 집약된 새로운 양식으로 신라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기원적인 석탑이다.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고졸한 자태를 간직한 거대한 규모의 석탑으로 시대에 따라 부분적으로 다소의 변화는 있지만, 이러한 형식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신라석탑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석탑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많은 부재로 구성된 방식은 백제석탑과 공통되지만, 백제석탑이 목조 탑파를 충실히 모방하고 있는 데 비해서 감은 사지 삼층석탑은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비율에 의하여 짜인 새로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은빛 물결의 장관… `무장산 억새군락지`

답사를 다니면서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접하고 알게 되는 기쁨 못지않은 즐거움이 있는데, 바로 유적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답사기를 연재하는 동안에도 사계절 가운데 꼭 그 계절에 찾으면 좋을 곳은 따로 언급을 하였다.

그러한 자연풍경 가운데 가장 큰 감동을 준 곳이 무장산 억새군락지다. 무장 사지에 유적을 답사한 후 한 시간 정도 더 산행을 하면 만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지금도 막바지 은빛풍경을 뽐내고 있을 것이니, 가을이 가기 전에 이곳을 찾아 은빛파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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