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우리 독서팀의 독보적인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독서 토론 후, 점심을 겸한 친목 자리에서 이어진 그녀의 패션 강좌(?)는 책 읽는 즐거움을 앞질렀다. 귀걸이는 하의 색깔에 맞춰 달아 보세요. 머플러는 매는 방법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요. 패션의 완성은 신발과 가방이니 소홀하면 안 돼요.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몇 술 뜨지 않았는데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패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얘기인데도 그녀의 한마디는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녀에겐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를 매혹으로 이끈 건 그녀의 패션 감각이 아니라 그녀 자체였던 것이다.
그녀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밝았다. 바둑, 에어로빅, 노래교실, 종교 활동, 산악모임 등 그녀의 활동 반경이 넓은 만큼 그녀의 매혹 또한 커보였다. 그녀의 긍정적인 인품을 높이 산 우리는 급기야 독서회 부설 산악모임까지 결성해 그녀를 등반대장으로 임명해버렸다. 리더가 된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산행, 초보자들을 배려한 장소를 물색하고, 자세한 산행코스를 설명해주고, 운전까지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번거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찌푸린 적 없고, 진심으로 멤버들을 챙겼다. 그녀 덕분에 우리는 몇 달 동안 용장골에서 양학산, 도움산, 봉좌산을 거쳐 동대산 정상까지 오르는 희열을 맛보았다.
산행 중 담소를 나누며 찍은 사진에서, 일행의 시선은 하나같이 그녀를 향해 있다. 그녀를 향한 무한한 신뢰의 눈빛들, 그것은 그녀 긍정의 리더십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아량, 그 어떤 불편함도 만들지 않는 천성적 관용이 그녀에겐 습관이 되어 있었다. 마음이 태산인 사람에겐 까칠함도 다정이요, 마음이 지하 감옥인 사람은 다정함도 까칠함이 되기 쉽다. 그녀를 보며 내 지하 감옥을 생각한다. 내 좁은 식견에서 오는 강박과 욕망을 질책하고 반성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은행나무, 2005)는 강박이나 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세상 범부들 대개, 욕망은 높으나 노력은 제자리걸음이다. 그 와중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가고, 그 두려움은 크고 작은 강박이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이런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두고 작가의 처방은 명쾌하다.
사람들아, 인생은 길고 욕망은 순간이란다. 그 인생 즐기려면 단순하고 낙천적이 되어라. 정신과의사 이라부를 등장시켜 무거운 삶을 가볍게 매친다. 쓸 데 없이 집착하고, 고민하고, 아파하지 않기. 내 영혼이 피폐해지는 건 과욕에서 오는 강박 때문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 독자들은 기꺼이 이라부가 주는 유쾌한 비타민 주사 한 방을 맞는다. 제 안에 갇힌, 검붉게 탁한 욕망의 핏줄 밀어내고, 맑고 푸른 낙천의 비타민 온몸을 휘돌게 하고 싶은 것이다. 때론 공중그네 같은 삶의 곡예에서, 맨바닥에 나뒹굴더라도 그건 파트너의 잘못이 아니다. 내 손목을 놓친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 안의 내가 스스로를 놓아버린 것임을 알자.
무시로 흔들리는 공중그네 같은 삶, 원한다면 비타민 주사 처방을 위해 책속의 이라부에게까지 달려갈 필요도 없다. 곁 돌아보면 패션리더이자 인생리더이기도 한 숱한 그녀들이 담백한 인생 처방전을 들고 손 흔들 터이니. 그들이 내미는 처방 또한 정신과의사 이라부와 다르지 않다. - 무거운 게 삶이니 가볍게 건너라고. 까칠함도 다정이니 타인에게 제 맘 덜어주라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