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서양화가
잘산다는 미국 땅에 모든 희망을 걸고 떠나가던 행렬을 일러 아메리카드림이라고 했다.

춥고 배고픈 내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겨운 역사다.

그나마 미국행 이민 비자를 받고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던 때가 어제 같다. 미국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칠레 등지가 또 다른 꿈의 세계로 각광을 받으면서 숱한 동포들이 새 희망을 찾아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은 모두가 성공하여 그곳에서 다들 잘살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니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듯. 떠났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되돌아오는 역이민이 늘고 있다는 소문이다.

최근 외교통상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이민자 수가 1995년에 1만6천명으로 가장 정점을 이루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더니 2007년엔 9천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했던 뉴질랜드, 캐나다 역시 이민자들이 급격히 줄어든 데다 도리어 그곳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되돌아오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나라가 한창 어려울 때 떠나갔던 이민 1세대나 1.5세대들의 정서 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의 부흥이 역이민을 부추긴 결관지도 모른다.

내가 잘 아는 어느 분도 70년대 중반 무지개 꿈을 안고 미국엘 이민 갔다가 몇 년 전에 다시 되돌아왔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동경했던 미국생활에 환멸을 느꼈다는 그분의 소감을 들으면서 그곳이 결코 꿈만이 넘쳐나는 곳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고국으로 되돌아오는 역이민자의 수가 최근엔 2천여 명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 있지 않아 희망의 메시지로 여겼던 아메리카드림은 먼 전설이 될 것 같다.

지금이야 이민이나 해외여행이 자유롭다 보니 별로 특별한 것으로 여기질 않지만 과거 60, 70년대만 해도 외국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특권쯤으로 비쳤다. 보통사람들이 외국엘 가려면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는 특별초청장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내가 직접 겪어봐서 잘 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미국에 미리 건너간 지인의 주선으로 이민 비자를 이용 미국유학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엔 국비유학생을 빼고는 자비 유학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체류지의 누군가가 비행기 표에서부터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이 있어야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어느 정도 잘 해결되어 비자발급을 받으려고 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였던 것. 지금처럼 이렇게 자유로운 왕래가 될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때라 미국으로 떠난다는 그 자체가 가족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생이별로 여겼던 것이다. 결국 계획을 당분간 유보하기로 한 것이 그만 영영 꿈을 접고 말았지만….

그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도리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신천지로 여기고 몰려오고 있다. 코리아드림을 안고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의 근로자들이 때를 지어 몰려오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눌러 살려는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다민족국가로 분류될 날이 머지않았다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순수핏줄의 단일민족임을 꽤나 강조했는데 이미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전국 어디를 다녀 봐도 피부색깔이 다르거나 생김새가 다른 이방인이나 혼혈인들을 만나기란 어렵지가 않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한 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땅으로 여기며 떠나갔던 이 땅이 이제는 축복의 땅으로 변모한 것을 보고 되돌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도 없이 철새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마음만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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