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는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통속적인 틀 안에 가둬지기를 거부하는 영화이다.

박찬옥 감독은 장편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으로 `표면적으로는 잔잔하지만 내적으로는 격렬히 동요하는 인물을 그리거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리는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고 평가 받았다.

그의 두 번째 영화 `파주`는 삶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 통념을 거스르려는 사람, 즉 삶에 반항하는 사람들의 내면으로부터 그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감정과 관계를 예리한 작가적 시선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공부방 선생님과 제자로 만나 언니의 남편과 처제의 관계가 된 중식과 은모 사이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다. 사춘기 시절 은모의 가출 이후, 언니인 은수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고향인 파주로 돌아 온 은모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 살고 있는 형부 중식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그들의 약 7년 이라는 시간을 따라간다. 기나긴 시간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가는 전개 속에서도 영화는 커다란 에피소드나 별다른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두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나가며,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감정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 `파주`는 시종일관 변화해 가는 두 인물의 내면과 그들 사이에 놓인 말할 수 없는 진실, 이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을 동요시키고 파장을 일으켜주는 영화다. 인물들이 지닌 내면적 움직임만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다이내믹한 볼거리와 스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박찬옥 감독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 움직임과 파장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긴장과 흥미를 유발시킬 줄 안다. 단지 금기의 사랑이야기로만 `파주`를 본다면 이 또한 밋밋하고, 맛이 없을지 모른다.

영화 속 중식과 은모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들이 지닌 상처와 두려움, 죄책감과 원망, 그리고 의심까지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뒤흔드는 하나의 감정이자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대화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흔한 눈빛 교환이나 사소한 멜로 드라마적 에피소드 역시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관계와 그들이 느끼고 있는 내면의 혼란, 그리고 두 인물의 내면이 보여주는 상충과 대립,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낳은 모순된 결과를 통해 안타까움과 불안이 뒤섞인 특별한 멜로를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영화 `파주`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두 주연배우의 섬세하고, 차분한 내면연기라 할 수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금기의 사랑과 캐릭터의 복잡 미묘한 내적 변화를 밀도 있게 연기해 낸 이선균과 서우는 이번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모습이다.

특히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연기로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서우는 이번 영화에서 한층 성숙하고, 정돈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앳된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닌 여자 `은모`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서우는 이번 영화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형부에 대한 원망과 사랑, 그리고 의심 등 내면적인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 여성의 심리를 섬세한 내면연기로써 표현해 낸 서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금 그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