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현편집국/부국장
경주지역에는 두 명의 노병(兵)이 있다. 이중 한 명은 서울 부시장을 지낸 70대 백상승 시장과 4성 장군 출신 60대 정수성 국회의원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졸(卒) 출신이 아닌 지휘관 출신인데도 시민들은 쉬이 노병으로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행정 백전노장, 백상승

백 시장을 두고 시 공무원들은 분명 노장(將)임이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평가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정치적 판단, 추진력, 기획력 등은 노장이 아닌 별을 갓 달은 혈기 넘치는 장군이며, 경륜에서 품어내는 노련미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복케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행정력이나 정치력이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공과(功過)를 따지면 공(功)쪽에 점수를 더 주고 있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다. 왜냐하면 그가 민선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전자 시장들과 차별화한 `행정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했기에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사례는 2002년 7월 취임 직후 시민운동장 개방, 우회전 차선 따기 등인데, 이는 시민들의 복지와 편의와 관련된 아주 `단순한 사항`이었다. 더욱이 이런 실적은 수백억의 예산도 들지 않은 사업이자, 지자체장의`간단한 판단`을 요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부분을 `저울`에 올려 호불(好不)을 선택하는 것이 시민들의 정서라는 것을 전자들은 몰랐던 것이다. 7년 전의 일이지만 그의 행정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타성에만 젖어 있던 경주시 공무원들에게 개혁과 신사고 등 그의 요구에 대해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간부 공무원들의 반발을 비롯 노조의 저항 등에 대해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대처하는 모습은 황산벌의 `계백`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가 전국 1위의 지지율로써 재선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기야 그도 고민과 고통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서울시에서 근무한 그가 고향 땅에 정치적 뿌리나 지원세력 등 모든 것이 부족했음은 분명하다. 민선 1기 이후 선거 후유증, 반대세력 등은 그의 움직임에 걸림돌이자, 견제 대상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천 둔치 조성 사업이다. 90년대부터 수차례 걸쳐 언론이나 지자체에서 이 서천 정비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당시 결정권자는 갖은 핑계를 대여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취임과 동시에 이 사업을 추진하자, 반대세력들은 온갖 비난과 조소를 쏟아냈지만, 결국 이 시설은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야전노장, 정수성.

4성 장군 출신인 그는 지난 경주지역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실세 정종복 전 의원에게 정치적 장애를 준 장본인이다. 국회 내 몇 안 되는 무소속인 그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안강지역의 고질적 민원인 `산대리 공용화기 군 사격장` 이전을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그는 처음으로 국방부, 육본, 해병대 등 군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이 그의 경력을 입증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면 그동안 전자 선출직들이 이 지역 문제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했나` 라는 의문을 달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국회의원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행보는 `매사 적극적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현안을 두고 접근하는 방법이 철저하고,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그의 조용한 행보에서 느낄 수 있다.

평가는 실적으로

백 시장이나 정 의원 두 사람 모두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실적으로, 또 한 사람은 유권자의 선택으로 그리고 시대적 요구가 아닌 경주 시민들의 결정에 의해 선택받은 이들이기에 굳이 탓도 못하는 경주만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경주시민을 위한다는`의지와 투혼`도 중요하지만, 평가는 실적으로만 용인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며, 또한 계륵(鷄肋) 의미도 한번 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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