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하얼빈역에는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자리가 표시돼 있다. 역구내로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가 섰던 자리에 삼각형 모양의 보도블럭을 깔아 이토히로부미가 섰던 곳을 향하도록 해놓고 이토히로부미가 섰던 곳은 사각형으로 표시를 해뒀다. 그 곳에는 표시만 돼 있고 어떤 안내문도 없다.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표시가 의미하는 것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1909년 10월26일 아침 9시30분께 조선통감부의 초대통감이었고, 일본의 추밀원의장인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 의장대를 사열하고 각국 사절단의 인사를 받고 있을 때 10여보 떨어져 있던 안의사가 번개같이 권총을 빼들어 쏘았다.

이토히로부미는 세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곧 사망하게 된다. 안 의사는 `꼬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고 순순히 러시아 헌병에게 잡혔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구지방보훈청에서는 대한국인 손도장 찍기 행사를 가졌다. 지난 7일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가진 손도장 찍기 행사에 2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모두 열의가 넘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차례로 손도장을 찍었다.

안 의사의 손도장에는 구국의 결의를 다지는 `단지(斷指)`의 문양이 선명하다. 단지는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 의사가 1909년 3월 연해주 크라스키노 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동지 11명과 같이 맹세의 의미로 태극기를 펴 놓고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자른 것이다. 그런 후 솟구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고 썼다. 이렇게 단지회를 결성하고 그 해 10월에 이토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결심하고 결행한 것이다.

< 대구지방보훈청 선양교육팀장 지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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