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하포항시의원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혹은 갈두마을)은 북위 34°17′38″에 위치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자리 잡고 있다. 거의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고 지난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토말탑이 세워졌으며, 사자봉 정상에 건립된 횃불 모양의 전망대에는 흑일도, 백일도, 소일도 등 수려한 다도해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남해를 향한 벼랑에는`맨위가 백두산이며 맨아래가 이 사자봉이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이름하여 땅끝 또는 토말(土末)이라고 하였고…`라고 세긴 토말비가 서 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 상식 문답`에는 서울에서 해남까지 1천리, 서울에서 극북의 온성까지 2천리를 헤아려 3천리 금수강산의 유래를 강조한 바 있고 난중일기에서는 어란진에서 왜선을 추격하여 접전을 벌였다는 충무공의 전란 역사도 소개하고 있다.

해남의 남쪽 땅끝마을에 비해 다소 생소하긴 해도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 자리한 서쪽 땅끝마을도 최근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돌과 빼어난 송림이 어우러진 바다마을임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노래로도 잘 알려진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통개항, 어은돌포구 등 근사한 해변이 줄지어 선 태안반도 최서단에 소원면 산하루 마을이 있다.

이처럼 해남과 태안이 남쪽과 서쪽의 땅끝마을이 자리한 곳이라면 `한반도 동쪽 땅끝마을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고장의 구룡포읍 석병1리가 바로 그곳이며, 자연부락명으로 더 잘 알려진 두일포(斗日浦)가 지정학적으로 동경 129°35′10″, 북위 36°02′51″ 에 위치한 최동단 땅끝마을이다. 두일포에는 범상치 않은 역사적 유래가 담겨져 있고, 그 속에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자리 잡고 있어 그를 빼고는 동리 명칭에서부터 시작될 두일포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북벌정책으로 유명한 효종에 의해 1659년 이조판서로 임명되고, 이후 1668년에 우의정, 다시 1672년에 좌의정에 승진하지만 이후 1675년에 덕원에 유배되었다가 웅천을 거쳐 1667년경에 두일포가 있는 장기현으로 유배를 와 동리 입구 큰 나무 옆에 있는 노적봉같이 생긴 바위 및 백사장에서 울분을 삭이며 흰 모래를 말에 담아 뿌리며 세월을 보냈다 하여 두일포라는 동리명이 붙여졌다고 유래되고 있다. 행정구역상의 공식명칭은 천혜의 돌이 병풍처럼 생기었다 하여 석병리라고 지었다 한다.

한반도 최동단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결코 적지 않는 두일포의 초라한 정경을 보노라면 우리 모두가 무책임한 방관자라는 죄책감이 들 정도다. 남쪽 땅끝마을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전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해남의 자부심이 되어 있고,서쪽 땅끝마을은 태안군 차원의 대대적인 예산 투자로 시설단장을 하여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동쪽 땅끝마을이 소재한 포항에서는 두일포라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 채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때마침 포항시가 신동해안시대를 맞아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 등 여러 국가사업 발굴에 착수했다고 하니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땅끝마을 주변을 정비하여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다.

두일포 부근엔 원시인의 흔적인 고인돌이 다수 산재해 있고, 동북간 300m 지점엔 잦은 왜구 침입에 대비했던 봉우재라 불리는 대곶 봉수대가 있어 어느 정도 개발 잠재력은 있다고 생각된다. 더 크게 보면 호미곶과 연계한 관광벨트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남쪽, 서쪽 땅끝마을이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면 동쪽 땅끝마을인 두일포는 동해안 특유의 선이 굵고 역동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대비되어 두일포 특유의 컨셉을 잘 찾는다면 그리 비관적인 프로젝트는 아닐듯하다.

포항시민 모두의 작은 자존심이라 여기고 오늘도 만경창파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동쪽 땅끝마을 두일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보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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