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前 문경중 교장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에게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고향설(雪)`로 큰 위안을 주었던 천재가수 백년설(본명 이갑용, 1915~1980) 선생의 노래비가 성주의 명문고인 성주고 교정에 세워졌다.

가수 데뷔 71년 만에 노래시가 서게 되니, 세월로 봐서도 71년이 흘렀으니, 개인에 대한 공과(功過)의 시비도 충분히 거쳤을 것이다.

백년설 선생의 `나그네 설움`은 나라 없이 죽살이를 치던 암흑 속을 헤매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눈물과 기쁨을 선사한 순수음악 이상의 명곡이었다.

`번지없는 주막`도 일본에 빼앗긴 식민지 조선이다.

백년설 선생의 `고향설`도 어려운 곡조가 아니면서도 아련한 감명을 안겨준다.

지난 10월10일, 노래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일부 단체에서 백년설 선생을 친일분자라고 노래비를 취소하라고 거세게 항의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지금은 기억의 바다 밑에 깊이 가라앉은 친일가요 몇 곡을 들먹이면서 노래비 건립을 거칠게 막기도 했다.

연예인(가수)은 직업적 항일투사가 아니요, 대중 곁에 서 있는 약자에 불과하다.

일본의 드센 민족말살정책 앞에 훼절한 강골 항일투사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인물의 평가는 오늘의 안정된 시각으로 보는 것은 근시안적 평가다.

격랑이 드세던 단말마적 일제 말기를 가까스로 견뎌왔기에 백년설은 우리 국민들 가까이에서 해방의 기쁨과 피난시절의 어려움을 노래로 달래주었다.

남편을 여읜 가난한 과부가 전실(前室) 자식을 위해, 후살이(개가) 간다는 기막힌 말도 있다. 친일파 판정은 어떤 단체의 전유물이고 그들의 핵무기일 수는 없다.

양심이 있는 진짜 시민이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상의 구제불능의 포로가 되어선 안 된다. 자랑스러운 민족의 음악가 영후 홍난파 선생도 친일파로 몰아 생매장(?)을 하고 있다.

민족애를 일깨우는 100곡의 명가곡은 시렁에 얹어두고 죽지 못해 작곡한 친이라곡 몇 편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단군 이래의 최대 악성(樂聖)을 결딴내서는 안된다.

모 교육단체는 편협한 세계관을 가지고 이 나라 2세를 오도하면서, 자신은 전혀 성찰할 줄 모르고 사사건건이 사회를 난도질해대어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국운도 위태롭고 시간문제다.

필자가 보기에 이 나라를 위태롭도록 하는 것이 이미 죽어 흙이 되어버린 소위 친일인사(?)보다 지금 살아서 국기를 뒤흔드는 종북좌파가 진짜 재앙이다.

말만 하면 친일파 저주를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휘두르는 너는, 백년설이 목메이게 `나그네 설움``번지없는 주막` `고향설`을 부를 때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꼭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아무 일도 않으면서 남의 하는 일에 재나 뿌리는 비겁한 분자보다 욕을 먹더라도 소신껏 행동하는 일꾼이 백배 믿음직하다.

백년설 선생의 노래비가 세워져 2009년 올해 문화의 날이 더욱 멋져 보였다.

백년설 선생의 노래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균형잡힌 국민의 가슴에 감동의 소용돌이를 길이 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노래비에는 백년설 선생의 대표곡 `나그네 설움`의 악보와 가사를 새겨 놓았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선창가 고동 소리 옛님이 그리워도/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타관땅 밟아서 보니 십년 넘어 반 평생/사나이 가슴속에 한이 서린다/황혼이 짙어지는 고향도 외로워라/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나그네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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