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서예가
인류사회의 발달은 절대주의 국가를 부정함으로써 법에 의한 정치를 기조로 성립하고 이것이 근대 시민국가의 정치원리로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법치주의국가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법 우선의 원리에 따라 국가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규범을 마련하고 국가작용을 이에 따르게 함으로써 인간생활의 기초가 되는 자유 평등 정의를 실현하려는 국가의 구조적 원리 속에 우리는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과연 정의 위에 놓여 있는가. 법치국가를 정의국가와 동일시하여 일컬을 수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여러 통로로 설명될 수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법의 적용이 좌우 쏠림 없는 저울대의 영점에 가까운 사회나 국가일수록 민주국가이며 법치주의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을 성문화한 규칙 또는 명령으로 일반적이라기보다 전문적이기 때문에 법관은 권력이나 물질과 무관해야 하며 개개의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항상 시야를 넓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사법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어떻게 하면 국민이 만족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재판이 나라 전체의 법질서 확립에 얼마나 유익한가를 생각 또 생각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여기서 상식이란 깊은 고찰을 하지 않고서도 극히 자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법관도 국민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의 발달은 필연적인 인간 욕심으로 병리현상을 함께 수반하였으니 그 중 하나가 성범죄이다. 특히 아동 성폭력범죄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범죄의 발생률 증가와 그 흉악성이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안산시에서 발생한 아동 성범죄 사건인 조두순사건(일명 나영이사건)의 판결을 두고 국민들의 법 감정은 분노로 치닫고 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극악무도한 사건이 징역 12년으로 판결된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 사건은 단순한 성범죄라기보다 유래를 볼 수 없는 거의 살인미수에 가까운 흉폭한 범죄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9세의 아동에게 가한 범인의 의도적인 신체 손상이 영구적 상해를 입혀 어린 영혼을 평생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야 하는 불구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1996년 5월17일 뉴저지주에서 통과된 메건법이 연방 법률로 제정되어 역사상 최초로 아동 성범죄를 중대 문제로 공론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번 안산사건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단순 아동 성범죄로만 인식하여 일반형법으로 기소한 검찰이나 성범죄폭력처벌법이 아닌 일반형법으로 기소한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 명령을 내리지 않은 법원, 그리고 판사의 판결은 국민들의 법 감정에 대해 분노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시원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법의 고유기능 중 하나는 법질서로부터의 일탈이 낳은 사회심리적 병리현상을 법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항상 소송관계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 아픔을 같이 헤아려 어루만져줄 수 있는 넓은 도량과 넉넉한 인품을 법관들은 반드시 길러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이 사회는 앞으로 더 큰 사회병리현상을 가져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앞에 놓인 개개 사건들을 한낱 일거리로 보아 매순간 그것을 업무적으로 처리하는 데만 관심을 쏟기 쉽다.

그러나 이는 법관의 참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여론에 따라 형량이 바뀌면 사법부 신뢰가 무너진다지만 법치국가이면서 민주국가인 나라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가. 국민들의 법 감정이나 이 사회의 통용되는 상식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올바른 법질서와 국가기강을 세우는 것이 국격(國格)을 향상시키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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