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동아리 멤버 중에 다독하는 후배가 있었다. 덜 읽어서 섬이었던 나는 많이 읽어서 섬이 된 그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과의 불화를 즐길 수 있는 배짱도, 집단에 가린 개별자의 존엄에 대한 인식도 그미의 독서관이 내게 끼친 긍정적 효과였다.

습작에 관심이 있었던 내게 그녀는 자신이 선정한 권장도서 목록을 전해주곤 했다. 졸업하고 결혼한 뒤 서로가 못 만나게 됐을 때도 한동안 그녀는 내게 책 권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곤 했다. 그 중 한 권의 책에 유독 눈길이 간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맨워칭`(까치, 1994)이 그것이다. 책이든 뭐든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 책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섬세하고 밀도 있는 이해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인간 행동, 특히 몸짓에 관한 관찰 보고서인데, 내 경우에는 소설 쓰는데 참고가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온전하게 자리보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쓰는 자는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 때론 빠르고 더러는 깊게 대상을 읽을 수 있다면 더 잘 쓸 수 있다. 소설 쓰기가 곧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봤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표출하는 행동이나 태도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훈련이 제대로 된다면 인간에 대한 오묘한 오해를 넘어 종내는 무한한 이해를 얻어낼 수 있다. `인간 행동을 관찰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래서 매혹적이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제목은 맨워칭인데, 요즘은 `피플워칭`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맨워칭`이란 제목이 남성만을 가리킨다는 오해를 벗어 버리고자 피플워칭으로 개정 증보되어 나오는 모양이다.

동물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에 의하면 인간성은 곧 동물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한 마리 새를 관찰하듯 인간의 행동, 특히 몸동작을 현장에서 관찰했다. 정류장, 슈퍼마켓, 공항, 만찬장 등 사람이 행동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인종이나 민족, 또는 개별자의 다양한 일상 행동이나 태도를 관찰하고 분석해놓았는데, 얼핏 복잡해 보이는 그 행동들이 본질적으로는 동물적인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흥미롭다.

상대를 의식한다는 면에선 누구나 인간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맛없는 요리 앞에서 안주인이 자꾸 권하면 우리는 정중한 거짓말로 사양한다. 본심을 숨기는 대신 배가 부르거나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완벽한 거짓말을 한다는 건 어렵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손사래나, 입술을 찡그리는 사소한 행동을 보고 안주인은 손님의 거짓말을 알아차린다.

안주인은 그런 상대가 민망하지 않도록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예의 바른 손님 기분을 맞춰 주게 된다. 양쪽 모두 거짓말을 하고, 중요한 건 둘 다 그것을 안다. 말하자면, 상생의 거짓말인데, 많은 사회적 약속 중에 이런 행동 패턴이 은연중에 요구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불협화음이 되고 만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몸동작과 언어 신호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진심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 때 오해가 생긴다. 거짓말이 주는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거짓말의 단서를 몸동작과 언어 신호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협동의 거짓말이야말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필수항목이므로.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동물로 간주하고 있다. 한데 이것이 사람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입으로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몸으로 더 말한다.

타인에 대한 관용을 높이고 싶은 가을날을 꿈꾸는가? 그 사람의 말이 아닌 동작을 관찰해라. 그가 전하는 몸 언어를 통찰하다보면 어느새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가을 하늘만큼 드높고 푸르러질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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