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포항여성회장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위로받고 치유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 신고율이 6%밖에 되지 못하는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조두순 사건(나영이 사건)처럼 잔혹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 분노가 폭발적으로 발현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뿐이다. 어찌하여 제자리를 맴도는가?

자칭 “심한 성폭력 사건 생존자” 수(水·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수기 연재자)는 가장 먼저 생존자들이 경험하는 성적 수치심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폭력보다는 `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며, 성폭력을 조금 난폭한 `성`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하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뿐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사회조차도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꿀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성폭력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이는 너그러움에 대해 지적한다. 술을 마신 것이 심신 미약의 사유가 되어 감형이 되거나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으니 얼마나 너그러운 사회인가?

오히려 그럴수록 가중 처벌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 조두순을 향해 분노하고, 음주를 이유로 감형한 재판부에 대해 심히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재판정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만큼 성폭력사건에 대한 관습과 통념을 만들어낸 것, 그리고 재판부가 음주를 이유로 감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관습과 통념을 탄탄히 구축해 준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사회적 통념과 관습, 제도와 인식을 변화시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조두순을 만나야 할 것이며, 우리 아이들의 일상의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드러내고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조두순 사건처럼 “심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당연히 가해자를 향해 날선 비판과 대단한 분노를 아끼지 않으나, “경미한(?)”성폭력-성추행, 성희롱-이거나 “어떤 수위의”성폭력이어도 그 행위자가 친지 혹은 조직 내부일 경우 이를 외화시켜 드러냈을 때 비판의 칼날은 여지없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때문에 이를 드러내지 못한 대부분의 피해 생존자들은 평생을 가슴앓이하거나 왜곡된 성가치관, 남성들에 대한 혐오 등을 안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여 날선 비판의 칼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신과 비슷한 피해 경험을 말하고 나누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통해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며, 알지 못하면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사회 변화는 올 수 없는 것이다.

조두순 사건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 우리 사회가 대단히 “가해자 중심적”이며 “남성 중심적”이며 “허용적”이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동안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처벌 규정은 꾸준히 강화되어왔음에도 다시 또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한계, `성`문화의 변화를 위한 크고 작은 실천들만이 그 대안일 것이다. 하여 나영이와 그녀의 가족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선정적 관심은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나영이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낼 평화로운 날들을 위해 불합리한 통념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일상의 실천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모색하고 실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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