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前 문경중 교장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추석이라고 예외 일 수가 없다. 한 해 중 가장 밝은 달이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날이 궂어 추석의 보름달을 안타깝게도 못 보는 해도 더러 있다. 이런 돌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비결을 마련했다.

추석 전날 밤에 미리 열나흘 달을 보아 두는 일이다. 열나흘 달을 미리 보아 두니추석 달을 못 보았다고 크게 탄식할 것도 없다. 매사에는 두름성이 필요하다. 요사이는 별로 없는 일이지만 실탄(?)이 모자라면 회사 경리과에서 가불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나는 팔월 열나흘 밤에 보름달을 하루 앞당겨 가불하여 본다. 뜻밖의 기상변화로 추석날 달을 못 보아도 조금도 아쉬울 게 없다.

인간은 매사에 예방장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찌 슬기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올해 중추절은 개천절과 겹쳐져 태극기를 게양하게 되었다. 추석날 게양된 태극기를 보니 벌써 59년이 흐른 1950년 추석날 아침이 생각난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가 돌발하여 휴교를 하던 날 초등학교 3학년생이던 나는 전쟁이 터진 것은 생각도 안 하고 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는 말에 환성을 질렀다.

점촌이 적치하에 들어간 것은 1950년 7월31일이었다. 피난간 사람은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죽살이를 치렀고 피난 못 간 잔류민들은 매일 공습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1950년 9월26일 추석날 아침 해 떠오르는 이른 아침에 영강제방을 좌우로 하여 행군종대로 국군이 다시 진격을 해왔다.

초대형 태극기를 네 명의 국군이 펼쳐들고 대오의 맨 앞에 서서 입성을 하고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에 태극기를 보자 언덕에는 빛나는 아침이슬이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애국심이란 별 게 아니다.

오랜만에 국기를 보니 반가워 눈물이 나고 국군의 진격이 너무 감격스러워 만세를 부르는 것이 원초적 애국심으로 긴 설명이 필요 없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올해 추석은 각별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60년을 두고 추적해온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추석 직전에 알아냈고 그 선생님의 생사도 알게 되었다.

우락부락한 성격에 자부심이 지나친 담임선생님은 동료교사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지니고 지냈다고 했다.

해방 직후 초등교사는 보통학교출신이 주종을 이뤘는데 김성태 선생님은 5년제인 계성고보를 나왔다고 했다. 음악과 체육에 특기가 뛰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아동에게 체육 시간에 교련을 가르치고 음악 시간에는 음악 교과서 지도는 물론이고 동요작곡 집에 있는 노래도 가르쳤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아동이 1~2명에 불과한 것은 60년이 지난 워낙 오래전 일이요 김 선생님이 지도한 기간도 지극히 짧았다. 김 선생님은 그해 학기 도중에 퇴직하고 단기 육사에 입교했다고 한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1951년 대대장(당시 소령)으로 안흥 횡성전투에 참전하셔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대대장인 김소령(김 선생님) 뿐만 아니라 1개 대대 전원이 포위당하여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 한다. 지금도 북한의 식량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거북하지만 내 담임교사를 역임했던 김 소령님도 인민군포로수용소에서 갖은 수모와 기아를 이기지 못하고 포로교환 직전에 포로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아사를 했다고 한다.

초등 2학년 담임 시절 부진아에게 밥통이라 놀려댔는데 정작 당신께서 밥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굶어 죽었다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를 간장종지에다 삶은 옥수수를 한 종지씩 주었다 한다.

하루 동안 삶은 옥수수 두 종지로 겨우 연명을 했단다. 그래서 영양실조에 걸려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가 되고 변소도 힘이 없어 혼자 못 가고 같은 방 포로와 어깨동무를 하고 겨우 갔다고 한다. 어린 아동들에게 모진 말을 자주 하긴 했지만 인생의 말로가 너무 비참하셨던 것 같다.

잘난 선생님이 교단을 떠나 대대장이 되고 포로가 되고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었다니 활극 같은 인생이 비극으로 끝났다.

김 선생님 아닌 김 소령님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빈다. 올해의 추석 달이 밝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 순국선열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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