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가을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이 몸속까지 파고든다. 따뜻한 가을볕에 벼 이삭은 익어 가고 과일들도 영글어 간다. 미리 알리지도 않았고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가을은 허전한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제 산과 들녘은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무와 풀들은 겨울준비를 위해 무성했던 잎새들을 털어 버리느라 분주하다.

시인 릴케는 가을을 이렇게 노래했다. “잎이 집니다. ….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가는 듯 /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집니다. / 그리고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 고독에 잠깁니다. / 다른 모든 별들에게서 벗어나….”

시인은 가을이 마치 하늘 정원이 시들어 가듯이 지구가 무거운 고독에 잠긴다고 노래했다. 그래서 가을은 고독한 계절인지도 모른다.

또한 릴케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좀 더 성숙하고 사색적인 가을의 중후함을 노래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중략)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가을은 고독과 사색의 계절이다. 가을은 단풍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이다. 낙엽이 질 때의 그 허무함, 그리고 언젠가 떨어져야 하기에 마음이 허전하다. 그 허전함과 텅 빈 마음 때문에 가을은 모두가 시인이 된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고독과 쓸쓸함으로 밀물처럼 밀려온다. 특히 가을비가 소리 없이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더욱 가을이 고독과 사색을 넘어 그리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가을은 차가운 기온과 더불어 심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래서 가을은 고독의 깊이와 추억의 그리움과 인생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가을은 텅 빈 가슴을 만든다. 그 허전한 가슴에는 수만 리 깊고 깊은 우물이 있다. 우리는 그 우물에서 그리움을 퍼 올린다. 그 그리움은 하늘의 별과 같이 애절하다. 그 그리움은 고독을 씻어주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외로운 마음을 달랜다.

가을은 무엇보다 열매의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은 모든 땀의 마침표다. 봄부터 농부는 열매를 바라보면서 땀을 흘린다. 농부에게 있어 열매는 기쁨이고 보람이다. 삶의 존재의미다. 열매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열매는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 열매는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 아니 먹힘으로 행복한 것이 열매다.

사람들은 꽃을 더 좋아한다. 꽃에는 향기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꽃은 그 속에 생명이 없다. 그러나 열매는 그 속에 생명이 있다. 그 씨앗 속에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고 숲이 있다. 우리들은 꽃처럼 한순간의 자랑이나 인기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열매가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기쁨을 주듯 이 가을에 우리는 열매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찬바람이 피부 속을 파고든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이 회색의 색으로 변하여 간다.

이제 점점 가을이 깊어 갈 것이다. 가을이 깊을수록 우리는 인생의 고독과 사색을 즐겨야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하나같이 고독한 사막을 건넌 사람들이다. 사막과 광야는 인생을 성숙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인생을 더 빛나게 만든다.

이제 얼마 후면 낙엽들은 하나 둘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는 자기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이 가을 우리는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세속의 욕심을 털어버려야 한다. 인간의 위선, 가면, 자신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포장 했던 그 많은 낙엽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서 가을은 진실 된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태양이 가장 고울 때는 저녁노을이고, 잎이 가장 붉을 때는 가을이다. 그러나 그 소중함도 순간적이기에 더 아름답다. 갑자기 가을바람이 분다. 낙엽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조차도 아름답다. 그것이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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