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
추석만 되면 늘 의문이 생기는 게 있다.

추석의 다른 말인 `한가위`, `가위`, `중추절`, `가배`에 대해서는 그 어원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한`이라는 `크다`라는 뜻과 `가위`의 `가운데`라는 말로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고, 또 `가위`는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눠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어 갚는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고 한다. 이밖에 `중추절` 역시 가을을 초추 · 중추 · 종추 3달로 나누어 볼 때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어가므로 붙은 이름으로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런데 `추석`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해석이 없다. 어딘가에서 추석(秋夕)은 칠석(七夕),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중추(仲秋)의 추(秋)와 월석(月夕) 석(夕)을 따서 추석이라 한 것이라고 한다. 왠지 이 대목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다.

추석, 한자 뜻풀이를 하면 말 그대로 가을 저녁이다. 분명 가을은 저녁이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즈음 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일본문학에서 최초의 수필집으로 `마쿠라노소시(枕草子)`라는 작품이 있다. 1천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는 세이쇼나곤이라고 하는 여류작가이다. 내용은 당시 궁정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자연이나 인생사에 관한 감회 등이다. 이 수필집의 첫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라 인용해 본다.

봄은 새벽이 인상적이다. 차츰 동이 터오는 동쪽 산과 접한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져서 보라색으로 물든 구름이 가늘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여름은 밤이 좋다. 달이 떠 있을 때의 풍경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어두운 밤일 때도 좋다. 반딧불이 여기저기 수없이 날아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또 한 마리가 어렴풋이 날아가는 것도 재미있다. 비가 내리는 정경도 풍취가 있다.

가을은 저녁이 멋있다. 석양이 빛나며 산 능선에 가까워져서 이제 금방 지려고 할 때에 까마귀가 서너마리, 두세마리 떼를 지어 바삐 날아가는 것이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다. 또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것이 멀리 자그맣게 보이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 바람소리나 벌레소리 등이 들려오는 정취 또한 더 말 할 나위 없이 멋지다.

겨울은 이른 아침이 좋다. 눈이 내려 쌓인 아침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며…. (생략)”

음미하면 음미 할수록 좋은 문장이다. 각 사계절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뽑아 노래한 것인데, 참으로 공감이 간다. 봄은 새벽이 가장 인상적이고, 여름은 밤, 가을은 저녁, 겨울은 이른 아침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역시 여름은 뭐니뭐니 해도 밤이 제일 좋고, 가을은 해질녘의 저녁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러한 뜻에서 `추석`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번 추석에는 해질녘의 저녁 정경을 마음껏 만끽 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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