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서양화가
언젠가 영호남문화교류로 전주에 갔을 때다. 개막행사 후 만찬을 들면서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가다 보니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취기가 올라 얼굴이 벌겋게 된 그곳 작가 한 분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좌중을 압도한다.

“워따! 행님 만나니 거시기하네요 그동안 거시기하고 거시기 했는지라….?”

걸걸한 목소리에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꼭 조폭영화의 조연쯤 되는 폼에다 거시기 판이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 잡기가 어렵다.

옆에 앉은 다른 분이 “만나서 반갑고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묻는 안부라고 해석해 준다. 그런데 그 옆의 또 다른 분은 “그게 아니고 ”그동안 어떤 작품을 하셨고, 요즘도 작업 많이 하시는지요?” 라는 물음이란다. 듣는 사람에 따라선 제각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전라도의 거시기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황산벌`은 2003년 이준익 감독이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일전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학적으로 다룬 영화다.

영화를 보노라면 걸쭉한 영호남의 사투리가 스토리의 전개를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투리의 경연장 같아 보인다. 전쟁의 침울하고 극적인 비극을 그렸다기보다 당시를 살았던 보통사람들의 일상들을 조명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창출하려고 한 의도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로 인해서 한 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던 대사가 `거시기`다. 호남지방에서 주로 쓰이는 대표적인 방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된 바로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통용되었던 사투리라고도 한다.

전라도 이외의 다른 지방에서는 그렇게 흔하게 쓰이지 않다 보니 호남의 고유사투리로 많이 알려졌다.

`거시기`의 뜻은 하려는 말이나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갑자기 말이 막힐 때를 비롯하여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많이 쓰인다고 국어사전에는 풀이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뜻의 방언으로 경남이나 평안도 지방에 `거시키` `거서가니` `거석` `머서가니` 등이 있다고 한다.

방언 중에서도 영화연극, TV드라마 등에서 지방색을 돋보이게 하는데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경상도와 전라도 방언이다. 특히 2001년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는 한국영화사에서 최고 히트를 하면서 부산의 억센 사투리가 전국을 강타하기도 했다.

그 후로 폭력물영화나 방송드라마라 하면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예 작품이 되지 않을 것처럼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영호남사투리가 방송을 워낙 많이 타다 보니 이제는 알아듣기 어려운 토속사투리라기보다 누구나 다 아는 보편성을 띠기도 한다.

최근엔 `단디`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뜨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 출신지인 포항이나 경주 등지의 동해안 일대에서 흔히 쓰이던 사투리라고 한다. 같은 경북이라도 이 지역 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물어보면 생소하게 여긴다. 그랬던 이 `단디`가 요즘 TV의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등장하고 하다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는다. 대통령 배출이라는 유명세에 의해 부각된 탓인지, 어감이 조금은 특별 해선지는 모르지만 이 지방 출신이면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월례 고사나 시험이 있는 날이면 “시험 단디 쳐라” 꼭 한마디쯤은 들어야 했던 말이다.

`단디`는 단단히 하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인지는 그 어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대로, 똑바로, 단단하게, 확실히, 야무지게, 등등 빈틈이 없도록 잘하라는 뜻으로 각별히 주의를 환기시킬 때 많이 쓰는 당부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은 표준말 사용을 의무로 하는 교육부혜택을 많이 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언어의 획일성이 강조되면서 지방 고유의 사투리가 사라져간다. 이곳에도 이제는`단디`라는 말을 듣기란 쉽지가 않다.

제주도에서 제주방언을 듣기가 어렵듯이 대구에서, 광주에서 그곳 방언을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듣기가 어렵다.

이러다가는 사투리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선다.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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