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다가 준 돈, 다 뭐 했어!” “당신이 벌어다가 주긴 뭘 벌어다 줘요!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생활비하고, 아이들 가르치고, 당신 한 달 나가는 카드 값이 얼만지나 알아요? 술값은 또 어떻고요!”

아내의 말문이 터지자 당황한 남편은 담배를 입에 물고 베란다로 나간다. 흔히 있는 일이다.

얼마 전 상담한 가정의 경우 평범하고 또 소득도 만만치 않은 가정이었다. 그런데 가정의 부채내용을 들여다보니 주택을 사들인 지 5년이 지났지만, 대출액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추가로 과도하게 대출을 발생시켜 대출금 이자만 갚다가 이제는 목전에까지 오자 감당하기 어려워져서 상담신청을 한 것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한 가정이 이렇게까지 되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 문제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부부가 대화하지 않고 산다는 점이었다. 부부간의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가정의 재무적인 문제는 어느 한 쪽이 혼자 알아서 척척 해나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여성의 몫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런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은 적 없는 아내는 이리저리 혼자서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서서히 지쳐가게 된다.

가끔 `부부상담 받으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오, 저희 남편이 바빠서 저만 혼자 상담해야 할 거 같아요`라는 대답을 많이 듣는다.

이와 같은 가정을 상담하다 보면 평소 부부간에 대화가 거의 없고 서로 가정의 재무문제를 놓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인식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내는 애들 학비 걱정, 당장 돌아올 대출만기일 등 눈앞에 닥칠 일들에 숨을 헉헉거리며 생활하고 있는데, 남편은 `돈만 벌어다가 주면 다 알아서 하겠지`, `돈은 잘 모이고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가 전에는 몰랐던 서로 고민을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서로 간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가정의 재무문제는 알면 괜히 골치만 아플 것 같아서 서로 확인하고 알려주길 꺼린다. 하지만, 꺼내서 펼쳐 놓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보면 오히려 꺼림칙한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불확실한 것은 항상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 부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 우리 집의 재무문제와 미래 계획을 함께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필요하다면 주위의 재무상담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국제공인재무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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