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은 벌써 고향이다. 고향의 하늘, 들판, 냇가, 뒷동산, 소꼽친구들, 그리고 덩그렇게 고향을 지키는 정든 고향 집…. 이렇게 명절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소중함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고향은 늘 그리움이다. 고향은 따뜻한 어머니의 치마폭이다. 인자하신 아버지의 얼굴이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피는 사랑방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향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어린 시절 고향은 대체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버스터미널에 길게 늘어선 구불구불한 고향 행렬은 뱀 꼬리처럼 길었다. 손에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가 있었다. 시외버스 안은 콩나물같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고향이 가까워지면 고향집의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마중을 나왔다. 지금 기억으로 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가마솥에 돼지고기를 푹 익혀서 따뜻한 국물과 함께 내놓으셨다. 그 국물에 소금을 넣어 후룩 마시면 고향을 마시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런 맛을 찾을 수 없다. 아, 그 맛의 그리움이여!

요즘은 개인 승용차가 있어서 과거의 그런 추억은 없다. 그 대신 고향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다. 밀려드는 차량들 때문에 고향 가는 길이 복잡하다. 문득 꽉 막혀 있는 고향 가는 길을 보노라면 회귀본능이 강한 연어 떼가 생각난다.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예민한 후각이 있어 태어났던 모천(母川)으로 돌아온다. 수천 수만 리 바다에서 살다가 정확하게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생명의 비밀이다. 정말 신비하다.

고향은 찾아가는 사람과 맞이하는 사람이 있어 더 즐겁다.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의 설레임과 그리움, 그리고 고향을 지키며 긴 여행의 삶의 여정에서 맞이하는 사람의 기다림, 이렇게 고향은 그리움과 기다림이 맞물려 기쁨을 빚어낸다. 그래서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고향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고향이다. 이것은 그리움의 고향이다. 추억을 찾아가는 고향이다. 가족과 친지의 품이 있고 어린 시절 추억이 있으며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보름달이 있는 육신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런 육신의 고향도 부모님이 안 계시면 점점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서글픈 인생의 단면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오늘의 고향이 있다. `사람이 살다가 정들면 고향이다. 혹은 이웃사촌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태어난 고향이 아니더라도 이웃끼리 정들고 친해지면 곧 고향이다. 오늘의 고향은 현재의 고향이고 실존의 고향이다. 나와 네가 있고 이웃이 있고 우리들이 있으므로 살맛 나는 세상이다.

세 번째 미래의 고향이 있다. 이것은 죽어서 가는 고향이다.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고향이다. 미래의 고향은 세상에서의 수고와 고달픔을 쉴 수 있는 영원한 고향이다. 우리들이 언젠가 찾아갈 본향이다. 하나님의 품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영생이 있는 영혼의 고향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안식처다. 고향이라는 말만큼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어휘도 드물 것이다. 고향은 귀소본능이다. 이것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또한 고향은 안식본능이다. 쉬고 싶은 욕망이다. 고향을 떠나 나그네로 사는 삶의 고달픔을 고향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고향은 영접본능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에 가면 내 부모나 형제가 반겨줄 그리움이 있다.

고향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열차다. 고향은 우리의 삭막한 감정을 부드럽게 한다. 그것은 숲 속에서 맞는 밤처럼 아늑하다. 봄날의 푸른 산처럼 푸르다. 빗속에서 걷는 것처럼 끈적끈적 한 그 무엇이 있다. 고향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다.

그러나 우리는 고향을 초월하면서 살아야 한다. 고향이라는 말이 자칫 특정 지역의 이익을 챙기고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고향이란 지금 나와 자식들이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곳이 어디이든지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사람들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내 고향 내 고향만 부르짖는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을 때 통합이니, 상생이니 하는 화합의 시대에 역행하는 길이다. 고향과 고향은 서로 만나야 한다.

우리는 오늘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고향의 연속선상에서 고향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인생은 도상의 나그네다. 나그네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고향이 있다. 멀리 추억 속에서 고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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