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히 신드롬이다. 아니,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는 이제 신화가 되었다. 언제나 불황이라는 출판업계의 투정을 가벼이 웃어넘기듯 백만부 판매라는 빅뉴스를 독자들에게 보너스로 주기까지 한다.

올해 포항의 원북 역시 `엄마를 부탁해`이다. 원북 행사란 전국 몇몇 공공도서관에서 시행하는 범시민 책읽기 운동의 일종이다. 시민들이 접수한 후보 도서 중 한 권을 각계에서 위촉된 원북 심사위원들이 토론으로 선정하고 도서관측은 그 책을 올해의 원북으로 선포한다. 한마디로 `책을 가까이 하는 시민`이 원북 행사의 취지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원북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측에서는 도서대출 및 교환, 원북 작가와의 행사 그 외 공개토론회 등을 마련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올해의 원북 도서로 정해진 도시는 서너 곳이 된다고 한다. 백만부가 팔리기까지 이러한 원북 운동도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책 그 자체가 주는 감동 때문이라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원북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주에 공개독서토론회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시립포은도서관 주부독서회팀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과 자유로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우선 출간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독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이 책의 미덕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역시 신경숙 소설의 문체미학과 감성미학이 빠질 수 없었다. `부엌 살강에 엎어진 밥그릇`이나 `흙담 밑에서 뻗어가는 호박넝쿨`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미시적 눈썰미와 `엄마를 잃은 게 아니라 잊었다`는 감성적 성찰이 그미 소설의 특장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외 시점 변화의 독창성과 다소 신파인 곰소 아저씨와의 로맨스 등이 충분한 공감과 대중성을 획득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은 엄마의 희생은 과연 온당한가, 라는 의견을 나눴다. `엄마는 멀리서 생각하면 눈물 나고, 가까이서 보면 화가 난다`는 작가의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처음부터 (희생만 하는)엄마로 태어난 게 아`니라 애초에 엄마는 여자였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어법일 것이다. 엄마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온전한 가정이 지탱될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회한의 기록은 그대로 엄마에 대한 헌사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많은 독자를 울린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려이기도 하다. 혹여, 이러한 모성의 희생이 가부장적 혐의가 짙은 이들에 의해 현재진행형의 미덕으로 칭송되거나 강요되지나 않을까 하는.

맏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의 힘겨움과 나머지 아들들의 정체성 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의미 있었다. 장자인 형철이 밖으로 도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동안 나머지 두 아들은 둘째놈, 또는 아우라는 보통명사로만 존재한다. 아버지가 쓰던 밥그릇을 큰아들이 물려받고, 장독에 숨겨둔 `귀한` 라면을 큰아들만 먹고, 고구마 캐는 노동에서 맏아들이 면제될 때 나머지 아들들은 절규한다. `형만 장땡이냐`고. 남은 두 아들들을 보듬는다고 너희들도 장땡이다, 라고 엄마가 말한들 남겨진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적 상처는 성장한 뒤의 트라우마가 되니까.

가족애란 이름으로 한량이었던 아버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라는 주제도 패널과 방청객 모두를 몰입하게 했다. 신경숙 가족소설에는 빈번하게 `아버지의 부재`가 나온다. 그미의 책을 읽다보면 그 부분은 의도적이라기보다 경험적,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은 여자 때문이든, 역맛살이 낀 팔자 때문이든 집 나간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든든히 집안을 지키고 있는 아내 품으로 돌아온다. 그 어떤 아내의 힐난도, 이렇다 할 자식들의 반항도 없이…. 집안에 아버지는 부재중이지만 언제나 그 아버지는 면죄부를 받는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감히 부탁해본다. 책 속에서 아버지가 맏딸에게 엄마를 부탁하고, 맏딸이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에게 엄마를 부탁하듯 이제 아버지를 부탁해본다. 아니, 아버지께 부탁한다. 이 세상 아버지(남성)들아, 이 책을 읽고 싱겁다거나 뻔한 얘기라고 옆으로 밀어놓는 일만은 제발 없기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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