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
일본의 단편소설의 귀재라 일컫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작품 중에`거미줄`(1918)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연못가에 앉아서 연꽃 사이로 보이는 지옥을 바라다보았다. 지옥에서 간다타라는 죄인이 다른 죄인들과 함께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간다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 악독한 도둑이었는데, 단 한 번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날 숲 속을 지나가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길가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여 밟아 죽이려고 했는데,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생명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밟아 죽이는 것은 불쌍하다` 하여 그냥 살려주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간다타가 이런 일을 한 것을 기억하시고는 간다타를 구제할 생각으로 연꽃 위에 있던 거미를 살짝 집어서 지옥을 내려 보냈다.

지옥에 있던 간다타는 자기가 있는 쪽으로 거미줄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면서 거미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올라오면서 잘하면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극락까지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 올라와서 잠시 쉴 생각으로 자기가 올라왔던 밑을 내려다보았다. 지옥은 어느새 보이지도 않았다. 간다타는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자기 뒤를 이어 거미줄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아닌가.

간다타는 자기 한 사람으로도 견딜까 말까 한 거미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사히 올라왔는지 의아해하면서, 만약 거미줄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므로 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죄인들! 누구 마음대로 올라오는 거야. 내려가”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그 순간 거미줄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간다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문학의 이해`라는 시간에 이 작품을 읽고 토론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첫 질문은 “부처님이 너무하시네요. 구해주시려면 끝까지 구해주시지” 하는 것과, “극악무도한 간다타가 딱 한 번 거미 한 마리 살려준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등이었다.

학생들 지적처럼 극악무도한 간다타가 딱 한 번 거미 한 마리 살려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 될 수 있을까. 간다타가 거미를 밟아 죽이려고 하다가,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생명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밟아 죽이는 것은 불쌍하다”고 깨달아 거미를 살려준 것에 초점을 맞추어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과 깨닫지 않고 우연히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때 `할육무합`이라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처님이 시비(尸毘)왕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매에 쫓기어 시비왕 품속으로 날아 들어오며 구조를 요청했다.

시비왕은 비둘기를 자신의 품속에 품으며 매에게 비둘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매는 시비왕에게 비둘기는 저녁 먹잇감으로 비둘기를 먹지 못하면 며칠을 굶은 터라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시비왕은 비둘기를 살리고 매도 살리는 방안을 생각하여 매에게 비둘기 무게만큼의 자기 살을 떼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비왕은 저울에다가 비둘기를 올려놓고 자신의 팔뚝의 살을 떼어내어 다른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훨씬 가벼워 보이는 비둘기 쪽이 더 무거웠다.

시비왕은 하는 수 없이 다른 한쪽 팔뚝의 살을 떼어 올려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벼워 보이는 비둘기 쪽이 무거웠다. 이번에는 다리 살을 떼어 놓아도 여전히 비둘기 쪽이 무거웠다. 하는 수 없이 시비왕은 자신의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았더니 그제서야 비둘기 무게와 똑같아졌다는 것이다.

시비왕도 처음에는 비둘기가 작고 가벼워서 비둘기만큼의 고깃덩어리는 얼마든지 떼어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다 내놓아야 비둘기 몫하고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생명의 무게, 즉 생명의 소중함은 똑같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생명마저도 경시되어 가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되새겨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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