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우시장에서는 팔려가는 소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흥정소리가 시끌벅적했다.
“요즘은 그래도 소 값이 많이 좋아져서 마누라 선물도 하나 샀고, 추석 명절 때 내려올 손주들 용돈도 좀 줄 수 있겠네. 자식 같은 소를 팔았지만 이런 생각하면 왜 안 좋겠노.”

우리 농가에서 소는 가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경운기가 등장하기 전 농사일의 일등 공신이었으며, 급한 목돈 마련에도 언제나 1순위였다.

이러한 전통은 21세기를 맞아서도 변하지 않았다.

명절과 대학 입학 시즌 등 급전이 필요한 시기마다 소는 여전히 농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추석 명절을 20여일 앞둔 14일. 전통 우시장인 경주 안강우시장. 동도 트지 않은 새벽 5시부터 분주하기만 하다.

소를 사려고 일찌감치 도착한 사람들은 시장 옆 간이식당에 둘러앉아 저마다 이야기에 열중이고, 다른 한켠에선 급히 출발하느라 미처 달래지 못한 허기를 국밥이나 컵라면 등으로 때우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모두 소 상인들이다. 가까이는 경주부터 멀리는 충북지역까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정식 시장이 열리는 시간은 새벽 6시30분.

그러나 상인들은 소 주인이 도착하기도 전부터 `오늘 적정 가격은 얼마인가` `요즘 소고기 유통은 잘 되는가`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30분 남짓의 정보교환이 진행되면, 어느새 어스름한 어둠을 뚫고 소를 실은 트럭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아직 시장 문이 열리기 전이지만,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거래의 시작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상인들은 속속 도착하는 트럭의 행렬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소를 미리 마음속에 정해둔다.

그 자리에서 소 주인들과 재빠른 흥정에 나서는 상인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메케한 소 분뇨 냄새와 울음소리, 시끌벅적한 흥정소리가 분분하기를 또 1시간. 시장 입구를 굳게 잠갔던 자물쇠가 열리자 눈 깜짝할 새 300여 마리의 소들이 간이 막사에 빼곡히 늘어선다.

팔려가는 자신의 신세를 아는 것일까. 소들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시장을 가득 메운다.

어느 한 시인은 그걸 `슬픔`이라 표현했던가. 소의 울음은 뒤로하고 시장은 순식간에 북새통이다. 왁자지껄한 흥정소리로 바로 옆 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경주축협에서 나온 거래 중개인들도 분주한 모습이다.

중개인들은 상인과 주인의 중간에 서서, 양측 모두 피해를 보지 않는 적정가격을 책정해 주는 `심판관`. 가격 분쟁 등을 해결해 내는 노련함이 장난이 아니다.

이날 수소 비육의 적정가격은 ㎏당 8천500원. 수입 쇠고기 파동이 한창이던 올해 초 6천500원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가족처럼 기른 소를 내다 파는 주인 마음에는 미흡할 뿐이다.

거래가 마무리 된 소들은 브루셀라병 등 간단한 검진절차와 체중 측정을 거쳐 새 주인의 손으로 넘겨진다.

오전 8시. 동이 모두 밝아지자 대부분의 소는 팔려나갔고 시장도 서서히 막바지를 준비한다.

이때가 바로 시장에서 가장 인심이 나는 시간이다. 목돈을 만진 주인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우들과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서로 계산하겠다고 아우성이다. 기분 좋은 실랑이다.

시장 한편에 각종 옷이며 식칼, 공구 등 생활용품을 늘어놓은 난전 상인들도 재미가 쏠쏠했는지 얼굴에 웃음이 넘쳐 그저 정겹다.

“오늘 암소 두 마리를 팔았지. 추석맞이 하려고 내놨는데 값도 그럭저럭 받았어. 올 추석은 걱정 없을 것 같아”

집으로 향하는 올해 76세라는 한 노인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신동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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