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치료 프로그램 중에 빠지지 않는 추천 도서 중의 하나가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푸른숲, 2006)이다. 도서관 입구 책꽂이, 눈높이 맞춤하게 꽂힌 그 책이 욕심나긴 했지만 다른 책에 우선순위가 밀리곤 하였다. 분권 두 권짜리가 아무래도 부담이 됐나 보다.

긴 제목만큼이나 사랑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걸까? 그미의 다른 소설 `세월`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는 기본적으로 길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두 권짜리일 필요가 있을까 싶게 동어반복에 중언부언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별 불만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건 상처의 우물에서 건져 올린 단물 같은 치유의 힘 때문이다.

이 책의 본질은 상처에 관한 치유이고 곁다리는 권력에 대한 속성쯤이다. 사랑이 세상을 움직일까? 아니면 휴머니즘이? 천만에! 덧씌운 사랑의 환상을 걷어내고, 어쩌면 겉치레일지 모를 휴머니즘의 꺼풀을 벗겨내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속성은 권력에의 욕망이란다. 따라서 사랑의 실체 또한 환상이나 로맨스가 아니라 욕망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욕망은 다다르기 힘들고, 그 뒤끝은 상처로 남기 쉽다는 것이다. 그 상처가 주체적 삶의 밑거름이 되느냐 아니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 상처의 치료과정을 작가는 소설 형식을 빌려 얘기하고 있다.

유능한 건축사 세진은 누가 뭐래도 작가의 분신이다. 세진의 정신 분석 내용을 토대로 여성들의 성과 가치관, 타인과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면담자인 의사와 세진의 정신분석 과정은 경직되어 있지 않고, 현실감 있게 묘사된다. 세진의 여러 문제, 예를 들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이십대의 성폭행 에피소드 등은 충분한 공감대를 얻어낸다.

세진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결핍이다. 그것도 유아기의 상처에서 오는 결핍. 그녀로선 부모의 이혼이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되겠다. 결핍의 원인은 자신이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이다. 심리치료책을 읽기 전에는 잘 알 수 없었던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깨칠 때마다 마음 밭이 환해진다.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주변인들과의 상충 과정에서 자신의 콤플렉스가 형성되고, 그것이 또 다른 욕망의 출발선이 된다는 점은 매우 공감이 간다. 예를 들면, 아버지 같은 무심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남성관이나, 엄마처럼 희생적인 길을 걷지 않겠다는 내면화 과정도 유아기 이래의 이런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게 작가의 관점(아니, 심리학자들의 관점)이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인혜는 단순하고, 관계지향적인 반면, 독신녀인 세진은 완벽주의자이며 독립적인 캐릭터이다. 내가 볼 때 두 주인공 다 일정부분 작가의 이중분신이다. 작가가 체험한 것을 글로 썼기 때문에 상당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도 비판적 책 읽기를 한다면 세진과 인혜에게 완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장악력마저 지닌, 그토록 자주적인 세진이 왜 자신의 상처만큼은 동어반복할까 싶었다. 또한 세진에 비해 단순하고 온정주의자이며 남성 포용주의자이기도 한 인혜가 너무 세진의 입김에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뭍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여성들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있다. 두 주인공이 활동하는 `오여사`클럽을 통해 사랑에 대한 그녀들의 자의식을 들여다보자. 권력욕, 생존 본능, 미적 체험, 인간 사이의 소통 - 그녀들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피력한다. 한데,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주인공 세진이 이 모든 견해를 엎어버릴 만한 명쾌한 정의를 내린다. 사랑은 노이로제나 광기이며, 자기 콤플렉스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예를 들면 가난을 상처로 가진 사람은 부자를,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고학력자를,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자를 선망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곧 자신의 상처나 콤플렉스가 된다`는 말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삶은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부산물이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권하는 책인 만큼 그 시행착오의 마음 밭에서 언 상처를 일구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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