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라는 이름으로 사는 그녀들 `친구`일까? `웬수`일까?

 

영화사적으로 보면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은 항상 관객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만큼 쉽게 잊고 살아가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무뚝뚝함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고, 토라지다가도 그 누구보다 진한 감정들을 공유하는 관계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영화 `애자`는 바로 그러한 모녀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응석과 투정을 부리기 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리는 영화가 바로 `애자`다.

스물아홉 애자. 고교 시절엔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남겼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 생활이 녹록지만은 않다. 지방신문 당선 경력은 억대 공모전 수상에 태클을 걸고, 바람 피우다 걸린 남자친구 때문에 속 끓이기 바쁘다. 무엇보다 애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부산 사는 엄마 영희. 공부 못하는 오빠만 유학 보내줘 어릴 때부터 애자의 심기를 건드리더니 이젠 나날이 결혼 독촉 하느라 바쁘다. 자신이 사고뭉치 딸인 건 생각도 않고 엄마에게 지겨움을 토로하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그리고 말기 암으로 고통 받는 엄마와 그걸 지켜봐야 하는 딸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가 전하는 신파적인 느낌은 감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투병 중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애처롭게만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일찌감치 두 모녀에게 이별 통보를 알려주고, 그것을 준비해가는 두 모녀의 모습을 웃음으로써 풀어나간다. 그것은 관객들 역시도 그녀들을 보며 마냥 슬픔을 느끼기보다 그런 웃음으로써 그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영화 `애자`는 그저 엄마를 떠나보내는 딸의 슬픔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그려 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제 멋대로 인데다 버릇없는 딸이지만 누구보다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애자의 마음은 곧 여느 자식들의 마음이며, 항상 잔소리만 하고 강한 척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가득한 영화의 모습은 곧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기에 그들의 이별 준비는 관객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

`캐릭터 묘사가 박력있고 필력이 돋보인다` 정기훈 감독의 `애자`를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의 최우수작으로 선정하며 심사위원들이 언급한 총평이다.

4년 동안 오직 `애자`의 시나리오에 몰두한 감독은 더욱 리얼한 묘사를 위해 주변 사람들 중 400쌍의 모녀를 만났다. `싸울 때는 주로 어떤 주제로 싸우나?`, `화해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엄마가 돌아가실 땐 어떻게 이별했나?` 등 실제 모녀들에게 들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애자`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웃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또한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애자와 영희 역시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탄생되었다. `애자`는 바로 정기훈 감독의 전 여자친구를 모티브로 완성된 인물, 특히 `애자`란 이름은 전 여자친구의 이름에 `애`자가 들어갔고 그녀에 대한 의미 있는 보답을 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편 `영희`는 감독 본인 어머니의 성격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차용된 인물이다.

최강희와 김영애, 두 주연 배우 모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는 영화 <애자>를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