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에 가득한 축제의 흥겨움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내려 메기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중략)

`근대화`는 오랫동안 우리의 화두였다. 개화기부터 국가의 모든 목표는 오로지 이 근대화 하나에 맞추어졌다. 경제나 정치는 물론, 교육, 문화도 근대화가 최고의 목표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근대화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육체적인 허기가 아니라 정신적인 허기다. 숨가쁘게 근대화를 향해 달려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백석의 `국수`는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백석의 `국수`는 국수를 예찬하는 시이다. 이때 국수를 `평양지방의 토속음식인 평양냉면`(고형진)으로 보기도 하고, `메밀가루로 빚은 국수`(이숭원)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조풍연이 신문에 발표한 `식도락`이란 글에, “서울 이남 사람은 `냉면`이라고 하지만 평안도에서는 `냉면`은 따로 없고 그냥 `국수`라는 것이 곧 냉면이다.”고 한 것을 보면, 두 가지 말이 다 맞는 셈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이란 책에서 국수는 주로 메밀로 만든다고 하고, 평안도 지역의 “국수의 발달은 화전민 생활에서 유래함”이라 하였다. 메밀은 원래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구황식물인데, 평안도 지역 특성상 메밀을 많이 키울 수밖에 없고 당연히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쪽에는 비교적 토질이 비옥하고 평야가 많기 때문에 굳이 메밀을 키울 필요가 없어서 “국수 숭상”의 필요성도 사라졌다고 한다. 백석의 `국수`는 바로 이 “국수 숭상”의 풍습을 알 때 더 깊이 이해된다. 그럴 때 “외따른 산 옆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자라는 것이 바로 메밀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확인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산멍에 같은 분틀”이라는 말이다. 산멍에는 큰 구렁이를 말하고, 분틀은 국수를 만드는 국수틀을 말한다. 분틀을 큰 구렁이처럼 본 것은 아마도 손잡이 모습이 구렁이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래 사용하면 손때가 묻어 뱀의 비늘처럼 반짝이지 않겠는가. 국수는 바로 이 분틀을 타고 내려온다. 평안도에는 국수를 자주 먹기 때문에 집집마다 분틀을 두고, 국수를 할 때면 솥 위에 걸고 국수를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바로 뽑아내었다. 그리고 이 분틀은 많은 힘이 필요하므로 한 사람의 힘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른과 애들이 함께 힘을 합쳐 축제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면 왜 국수를 먹는 날이 축제의 날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백석 시인이 이 국수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국수를 시에서 직접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라 부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것`이라 부른다. 국수라는 말은 제목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왜 이렇게 하였을까. 이것은 국수를 신성한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수는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부터 내려온 것이며, 그래서 국수를 먹는 날은 온 마을이 “구수한 즐거움”에 싸여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되는 것이다. 신성한 것은 함부로 이름 부를 수 없다. 만일 이 시에서 `이것` 대신에 국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썼다면 국수의 신성성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시의 수준도 형편없어질 것이다.

이 국수는 공동체의 축제, 그 속에서 하나가 된 우리 조상들의 신성한 삶을 나타내는 음식이다. 우리는 국수는 이어받았으나 국수에 담긴 그 정신은 버리고 말았다. 근대화를 통해 근대의 세계로 넘어온 우리는 음식 하나에도 스며 있는 따스한 공동체 정신, 축제 속에서 하나 된 즐거움을 미처 챙겨오지 못하였다. 백석의 `국수`는 우리가 바로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렸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문득 국수 그릇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깊은 의미 때문일 것이다. 국수를 먹으면서 옛 조상의 그 마음을 한 번 짐작해볼 일이다.

박현수 교수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경북 봉화 출생. 1992년 한국일보에 `세한도`로 등단. 시집으로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 평론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현재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