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은 이미 가을입니다.

저 고요한 세상 속에 참 많은 일들이 다녀갑니다.

누군가 살다 지는 곁에서

누군가 부지런히 피어나며

그렇게 제각각 정성들여 삶을 굴리느라 묵묵합니다.

가장 사소한 것으로 스며들기 위해

생이 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복숭아나무가

올해도 복숭아를 보냈습니다.

둥글게 잘 익은 계절이 바구니 속에 담겨 왔네요.

복숭아나무 한 그루 얻어다가

나무 농장 귀퉁이에 구덩이를 파고

꼭꼭 밟아 심으시던 오래 전 아버지도 따라 왔습니다.

봄 마다 피던 복사꽃도 따라 왔습니다.

굵고 탐스러운 것만을 골라

혹여 짓무를 새라 사이사이에 덧댄 정성이

받아 든 마음을 평평하게, 고르게 다스립니다.

복숭아 하나가 참 많은 것의 손을 잡고 가는 시간 입니다.

그러고 보니

크고 거대한 것에 딱딱하게 굳어 긴장하던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핀 꽃밭들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놓인 사물들,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는 개울이나 구름 앞에서

오히려 평평하여 장대해지곤 하였네요.

사소하여 자유로운 영혼들,

아니, 치열하게 고통을 뚫고 온 것일수록

제 모습 고스란히 세상에 스밀 줄 알아서

개망초 하나 본 순간부터 계절은 온통 망초밭이요.

능소화 피었구나 순간부터 담마다 능소화 넘는 것이었겠지요.

가을로 스민 사람들

바다로 스민 사람들

꽃으로 파도로 바람으로 더 깊이 스며 든 기억, 그 추억들.

오늘, 그대 왼쪽 의자에 앉아

우리가 아침마다 열고 걸어가는 들판을 바라봅니다.

콩 밭 언저리마다 떠오르는 등 굽은 아낙처럼

이제 `인동초`로 스며 든 한 사람의 부재가

세상을 평평하게 조율하는 들판이 되고 있습니다.

그대와 나 또한 저 언저리

자유로운 이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삶이길 바라며

일흔 다섯 번째 안부를 놓고 일어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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