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내가 잡아보던 손이라니

이게 내가 만지던 젖무덤이라니

이게 하얀 국화꽃에 싸여 모란같이 웃으시던 모습이시라니

세의야 세연아 평소 유언처럼 얘기해오던 내 말에 내가 이토록 당혹스러워하는구나 이제 바람에 날려버릴 한줌 가루에 그 많은 추억들이 담겨있었다니……

이게 너희들이 잡아보던 아빠 손이라니

이게 너희들이 안겼던 아빠의 가슴이라니

이게 너희들이 꽃입술로 뽀뽀하던 아빠의 뺨이라니

- 박찬 시집 `외로운 식량`(문학동네·2008)

2007년 1월 박찬 시인의 죽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했다. 박찬 시인의 다섯째 시집 `외로운 식량`은 그러니까 그의 유고 시집인 셈이다. 시집 속의 시편들은 병마(病魔)로 점점 꺼져가는 몸과 마음으로 박찬 시인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피워 올린 언어의 불꽃이다. 그 불꽃의 내용은 떠나는 자의 외로움과 남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빛으로 일렁인다. “외로움은 그의 식량” “누가 내 몸에 들어와 앓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인데/싸목싸목 가면 되지 않겠니” “-세상 참, 괜히 왔다 간다” “문득 돌아보면 이제는 아스라한 풍경들……” “정처 없는 길을 가네./다시는 오지 않을……” “어디에도 울기 좋은 곳은 없더라” “지루하고 막막한 날이 끝나간다” 등의 시구에서 보듯 그는 참으로 외로워 하다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어쩌면 박찬 시인이 남긴 이 유고 시편들은 마지막 그의 `외로운 식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당혹」을 읽으니 무척 당혹스럽다. 아직 살아 있는 시인이 죽어 한 줌 가루가 된 자신을 시적 화자로 내세워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움, 그 당혹을 목놓아 울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 그리고 먼저 떠난 어머니와 이제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러나 받아들여야 하는 분명한 사실을 눈앞에 두고 당혹해하는 시인의 캄캄한 마음이 먹물처럼 시의 행간에서 번져온다. 이 시를 읽는 남은 가족의 당혹감은 또 어떠했을까? 아, 삶과 죽음의 갈라섬이여!

해설<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