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며 쓸개를 꺼내 꿈도 꺼내고 추억도 꺼내 먼지와 소음으로 뒤범범이 된 술집과 거리에 늘어놓고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모아 약장수처럼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철지난 유행가 가락도 섞어서

저물면 주섬주섬 주워담아 넣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저녁노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그것이 지금 노을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리

- 신경림 시집 `낙타`(창비·2008)

신경림 시인의 근작 시집 `낙타`를 읽었다. 나는 이 시집에서 표제 시 `낙타`를 비롯한 삶과 죽음의 근원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는 제1부의 여러 시편들에 깊이 매료되어 그 시들을 읽고 또 읽었다. 한계적 존재인 우리네 이쪽의 삶과 또 조만간 누구나 건너가야 할 저쪽의 삶에 대한 신경림 시인의 시적 탐색은 소중한 작업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 `낙타`에서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손 저어 대답하면서,/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그렇게 저쪽으로 담담하게 걸어가겠다고 한다. 또`고목을 보며`에서는 “세월이 가면서 다 상처로 남았을” 고목의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통이/꽃보다도 또 열매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식을 통해 비극적 황홀에 젖기도 한다. 사람이 죽는 것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돌아갔다`라고 한다. 여기에 왔다가 다시 저기로 되돌아가는 길이 우리네 삶이다. 신경림 시인은 돌아가는 길(歸路)을 “약장수처럼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철지난 유행가 가락도 섞어서” 그렇게 웃으며 노래하면서 가려고 한다. 이는 “저물면 주섬주섬 주워담아 넣고 돌아오는 버스 안”과 같은 우리네 삶이 그래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삶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큰 긍정의 자세에서 기인한다. 원한 맺힌 것 없이 웃으며 노래하며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이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으로 얻으려면 지금 여기의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

해설<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