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잠을 부르러 강가로 나가

물도 베개를 베고 잔다는 것을 안다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

오종종 모인 마을이 수놓아져 있다

낮에는 그저 강물이나 흘려보내는

심드렁한 마을이었다가

수묵을 치는 어둠이 번지면 기꺼이

뒤척이는 강물의 베개가 되어주는 마을,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

무너진 돌탑과 뿌리만 남은 당산나무와

새끼를 친 암소의 울음소리와

깜빡깜빡 잠을 놓치는 가로등과

물머리집 할머니의 불 꺼진 방이 있다

물이 새근새근 잠든 베갯머리에는

강물이 꾸는 꿈을 궁리하다 잠을 놓친 사내가

강가로 나가고 없는 빈집도 한 땀,

물의 베개에 수놓아져 있다

- 박성우 시집 `가뜬한 잠`(창비·2007)

물도 잠을 자는가? 만약에 잠을 잔다면 강물도 베개를 베고 자는가? 박성우 시인은 그렇다고 말한다. 시인이 그걸 시골 마을에서 직접 보았다는데 어쩔 것인가. 어느 여름날 밤, 고향에 내려간 시인이 잠이 오지 않아 마을 앞의 강가로 나간 모양이다. 그리고 강 건너편에 앉아 밤이 이슥토록 마을 앞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의 화폭에 새겨진 커다란 그림 한 장이 바로 시 `물의 베개`가 되었다. “수묵을 치는 어둠이 번지면 기꺼이/뒤척이는 강물의 베개가 되어주는 마을,”인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를 나는 왜 보지 못했던가. 여름날 밤, 내 고향 마을 앞 동창천에서 수도 없이 봐 왔던 이 그림을.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는 위 시 4연에 열거된 것처럼 우리네 살림살이가 그대로 수놓아져 있다. 고된 농사일로 관절을 상한 늙은 농부의 신음 소리와 자식 대학등록금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중년 부부의 대화도, 술에 찌든 서방을 탓하는 젊은 베트남 새댁의 서툰 악다구니와 몇 명 되지는 않지만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도 수놓아져 있을 테다. 나는 박성우 시인의 둘째 시집 `가뜬한 잠`을 읽으며 그가 언어로 짜 올린 이러한 감동적인 큰 그림을 여럿 만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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