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지 은영일고 1
영일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첫 봉사활동에 체험학습을 가게 되어 아쉬웠다. 체험학습을 갔지만 마냥 다른 곳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다른 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4월, 내가 기대하고 바랬던 봉사활동에 가게 되어 매우 기뻤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운동장에 1학년 전교생이 모였고,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으셨다. 봉사활동 가기 전 마냥 들떴던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 내가 왜 봉사활동을 가는지에 대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 중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는 말씀이 가장 가슴이 와 닿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전승기념관에 도착하였을 때, 사뭇 나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생각해보았다. 전승기념관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왠지 평범한 기념관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승기념관에 들어선 후 2층 강당에 모두 모였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강당을 휙 둘러보았다. 무대 위 조명 쪽에는 플랭카드가 붙여져 있었고, 영일고를 맞이하는 글이 있었다. 그리고 밑에 조그만한 글씨로 ` 경주보훈지청 ` 이라는 문구를 보고 ` 아, 뭔가 문화재와 관련이 있거나 과거 역사랑 관련이 있는 곳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의 강의를 1시간 듣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제자리에 앉아 40분짜리 영상물을 보았다. 그 영상물을 보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느끼게 되었다. 영상은 남북전쟁을 주제로 만들어졌는데, 같은 혈족을 지닌 한민족끼리 서로 피를 보면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모습에 그만 울컥 하고 말았다. 반 친구들도 아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군인들의 시체위에 또 죽어서 쌓여가는 수많은 시체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수많은 감정들을 지금도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영상물을 보면서 가장 인상에 깊고 가슴이 찡했던 장면은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태아가 조그마한 바구니 안 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피난길을 올라가던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자식이 손을 꼭 잡고 바구니 안을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된다. 바구니 안의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힘들까? 내가 저 갓난 아이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대다수의 국민이 원치 않은 전쟁이였고, 한민족끼리 누가 이겼다 누가 패하였다를 가린다는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 전쟁통 속에서 희생되는 건 죄 없는 국민들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전승기념탑들을 보기위해 수백개의 계단들을 올랐다. 한 계단 두 계단 겨우겨우 오르고 나서 드디어 계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굉장히 높은 탑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동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또 하나의 탑을 거쳐 드디어 전승기념관 청소를 하게 되었다. 난 처음부터 내가 청소할 구역을 못 찾아 헤매었지만 이내 내 구역에서 청소를 하였다. 아주 긴 빗자루로 쓱쓱 떨어진 많은 잔잔한 꽃들을 쓸고 또 쓸었다. 떨어진 꽃들이 한자리에 뭉텅이로 쌓이자 나는 그때 엄청나게 뿌듯했었다. 하지만 몇 분도 체 안돼서 부는 바람에 나무에서 또 꽃들이 떨어지고 난 그것을 또 쓸고 쓸었다. 그래도 난 너무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빗자루질을 열심히 했다.

전승기념관을 다녀온 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우리나라 과거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과거 우리나라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많은 백성들과 남한군들의 희생 정신때문이 아닐까? 옛 조상들의 희생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조차 감사히 여기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이번 계기로 인해 정말 많은 반성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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