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람을 죽였습니다”

한국전쟁 산화 학도병 편지글 비석 공개

고 이우근 학도병의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글의 비석.

“어머님,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포항여중 앞 전투에서 꽃다운 목숨을 내던진 한 학도의용군이 어머니께 보내는 피묻은 편지글이 공개됐다.

당시 서울동성중학교 3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참전한 이우근 학도병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편지글은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시작, 어린나이에 전장에 임하는 불안과 공포를 담고 있다.

그는 이어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며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우근 학도병과 같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학도의용군 71명은 1950년 8월11일 새벽, 당시 포항여중 앞 전투에서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북한군과 접전, 48명이 전사했다.

포항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쟁터에 뛰어든 학도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청소년들의 애국애족 정신고취를 위해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글 내용 전문을 편지비로 건립, 11일 학도의용군회원 및 유족, 각 기관단체장, 고 이우근 학도병의 모교인 동성중고등학교 동창회 등 1천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용흥동 전몰학도충혼탑 광장에서 편지비 제막식을 갖는다.

용흥동 탑산에 가로 2m, 세로 0.5m, 높이 1.2m 규격의 화강석으로 건립한 편지비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검은 오석에 음각으로 표현하고, 반세기를 넘어선 세월의 흔적을 부식된 펜(청동)으로 표현, 그저 바라보는 비석이 아니라 애처러운 마음에 누구나 다가가 어루만질 수 있도록 조각했다.

/김남희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