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성당 젊은 신부 아름다운 그 시절

가난과 깊은 정이 평생에 그리운데

어이해 십자가 지고 명동언덕 올라섰나

불화살 최루탄이 발 앞에 날아와도

하느님 모습 닮은 인간이 존엄해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 구중서의 김수환 추기경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책만드는집·2009)

회보 `한국작가회의` 제61호 표지에서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이 쓴 시조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구중서 선생은 일찍이 70~80년대 한국문학의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학론의 논리와 영역을 개척하고 그 텃밭을 일궈온 분이다. 대학교 정년을 다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선생이 틈틈이 격조 높은 수필과 시조를 쓰면서 한국문학이라는 큰 산맥에 흙 한 줌 더 보태는 이 일은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2009년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善終)하셨다. 종교 간의 벽을 뛰어넘어 추기경의 선종을 안타까워하는 애도의 물결이 전 국민의 가슴에 넘쳐흘렀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등불이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삶처럼 추기경께서 “십자가 지고 명동언덕 올라”섰던 그 이유가 “하느님 모습 닮은 인간이 존엄해”라는 저 평범한 말씀이 독자의 마음에 감동의 눈물을 맺히게 한다. 그렇다. 그 무엇보다 인간이 존엄하다. 이걸 지켜내고 그 마음자리를 넓혀가는 것이 종교의 신성한 업무이리라.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추기경의 말씀인 듯한 평전의 제목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라는 이 깊고 큰 의미를 우리는 늘 되새기며 실천해나가야 할 일이다. 이 시가 수록되어 있는 시집`불면의 좋은 시간`(책만드는집·2009)은 구중서 선생의 첫 시집인데, 40년의 문단 생활의 예지가 오롯이 녹아있고, 선생이 직접 쓰고 그린 글씨와 그림이 함께 담겨 있어 시집을 읽는 독자의 기쁨은 더욱 크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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