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차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 송수권 시선집 `여승`(모아드림·2002)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한 송수권 시인. 그의 등단 작품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山門에 기대어`는 한국문단과 독자들에게 오래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으로 비유된 죽은 누이(실제는 남동생이었다고 함)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한을 유장하고 처연한 가락에 실어 놓은 송수권의 노래는 가히 절창이었다. 송수권 선생이 내일 제11회 `푸른시인학교` 초청 시인으로 포항에 온다고 한다. 어서 달려가 그의 노래를 듣고 비교적 선생의 최근작인 `시골길 또는 술통`이라는 시를 읽는다. 무척 재미가 있다. 시 속의 저 시골길, 1970년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시골길이 꼭 이랬다. 학교가 있고 버스가 다니던 명대 마을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가득 실은 커다란 짐자전거가 이웃 마을인 사깔, 북지, 그리고 우리 동네 길명의 신작로로 들락날락 했다. 짐칸엔 두 말들이 하얀 플라스틱 술통이, 자전거 바퀴 양옆에도 쇠고리에 술통을 매달고 비포장도로에 자전거가 씩씩 달려가던 그 풍광이 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살아 숨쉬는, 생명력 넘치는 시를 만나면 괜히 즐겁다. 시골길도 술을 마신 것 같고, 이 시를 읽는 나도 詩도 술을 마신 것만 같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는 마지막 행이 기막힌 표현이다. 주모의 치마 속은 아주아주 무서운 곳이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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