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템플턴(1912~2008)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 남동부에 있는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비 템플턴은 변호사 일 외에도 목화씨를 골라내는 공장을 운영하는 등 여러 사업을 했다. 덕분에 집안 형편은 비교적 넉넉했다.

존의 부모는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도와줬다. 먼저 아이들에게 충고를 한 적도 없었다. 행동이나 태도, 시간관념, 심지어 숙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물론 아이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성의껏 대답해줬고, 검소한 생활, 아낌없는 기부 등으로 솔선수범을 보여줬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어린 형제를 데리고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존은 형 하비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존은 이미 11세 때 전기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원 가꾸기, 천체 관측, 나비 채집, 사냥, 낚시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싼값에 물건을 사는 재주가 있었다. 12세 때의 일이다. 존은 마을 외진 곳에 고장 난 채 방치된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발견하고는 10달러에 산다. 그리고 똑같은 모델의 자동차를 한 대 더 구입한다. 차 한 대를 분해해 필요한 부품을 다른 자동차에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존과 친구는 반 년 가까이 자동차수리 지침서를 읽고, 기계정비공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한 끝에 마침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차는 무려 4년이나 더 달렸다.

존은 성적이 매우 좋았다. 초등 1학년 때 존은 우쭐해져서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줬다. 모두 A였다. 아버지는 내기를 제안했다. 한 해 두 차례 받아오는 학기말 성적표가 전부 A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면화 한 베일(bale· 한 꾸러미)씩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과목이라도 A 아래 점수를 받게 되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면화를 내놓아야 했다. 11년 뒤, 아버지는 아들에게 22베일의 면화를 빚지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전과목에서 A를 받은 것이다.

1930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템플턴은 예일대 경제학과도 수석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에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다시 미국에 돌아온 그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만 달러를 빌려 당시 1달러 밑으로 폭락한 104개 주식을 100주씩 샀다. 이 중 34개는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러나 꼭 4년 뒤 그의 투자액은 4배로 불어났다. 망한 회사는 단 4개였다. 1954년 그는 최초로 세계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만들었다. 1980년대 그의 주식 중 일부는 매입가보다 68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그의 투자원칙은 단순했다. `남들이 사면 팔고, 남들이 팔면 사는 것`이다. 이 역발상의 투자 철학은 그를 `투자의 전설`로 만들었다.

생각 & 생각

▶초등

1. 존 템플턴이 창안한 것으로 최초로 세계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는 무엇인가요?

2. 존 템플턴의 투자원칙은 무엇인가요?

3.위 기사에 맞는 부제를 붙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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