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수돗가에 앉아 분홍자물쇠로 꾹 잠근 문을 봅니다.
벚꽃이 훌훌 날릴 때 저 문을 나선 당신은
부용화 큰 얼굴로 피고 모감주나무 씨앗 여무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네요.
마당가 채송화는 식구를 늘려 저리 오순도순 피었는데
지난겨울 내내 경로당 앞에 세워졌던 낡은 유모차도
안보이네요.
 
강사리 앞바다 미역돌에 너불너불 미역 자라면
새벽같이 쫒아나가 팔순에도 깊은 자무질 하고
봄 햇살 짧다 짧다 부지런히 미역을 다듬어 널던 할머니.
큰 덩치에 큰 목청 장부 같아도
비오는 날 놀러가서 옛이야기 해 달라 보채면
부처처럼 앉아 시작했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흐르고 흘러
결국은 흠씬 눈물 쏟고야 마는 아픔 많은 당신이셨지요.
 
“내가 이래봬도 대보부텀 강사꺼정 다 디비도 따라 올 년 없는 최고 해녀 였다. 저 바다에 용사처럼 드나들매 살았다 아이가. 그렇다꼬 머시 돈을 모닸나 집을 지았나 암것도 없다마는 이래 문디 귀신같은 오두막살이에 기들아갔다 기나갔다 살아도 내는 내가 참 기특타. 와그라는 줄 아나? 자슥 8남매 무사히 다 키워 부산이고 울산이고 골골 짝짝이 다 심어 났으니 우예 안 기특켔노. 인자 암것도 부러울 기 없다. 물질로 해가 나오매 방구에 무르팍이 하도 찍히가 이래 다리 쪼매 아픈 거 말고는 몸도 성채, 울 자슥들 맨날 지에미 걱정해주고 울 손자 놈들도 손톱 하나 망가진 눔 없이 잘 크재, 머시 근심이겠노.”
붉어진 눈 쓱쓱 비비며 씩씩하게 다시 웃던 당신이셨지요.
 
열아홉 추자도 아가씨가 아픈 사연 안고 흘러 든 강사리.
환갑 넘어서야 딱 한 번 단체관광 다녀왔다는 제주도 이야기를
참 여러 번 들려 주셨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추자도도 아니고 겨우 제주도까지 간 걸음인데도
얼마나 벅차고 좋았는지를 알 수 있었답니다.
 
진이 할머니 성게 작업하시는데 우연히 들렀다가 이제야 들었어요.
지난겨울 내내 아프던 당신께서 결국 부산 아들네 집에 가셨고
그리고 더 더 먼 곳으로 아주 가셨다는 소식을요.
 
차려주는 밥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것도 이쁘다시고
냄새나는 노인네 좋다고 놀러오는 것도 이쁘다시고
바깥 날씨가 따뜻한데도 전기장판 위로 결국은 저를 앉히시던 당신,
그리 골방 쥐 드나들 듯 살던 놈이
좀 바빠졌다는 핑계로 뜸한 사이사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대한민국 최고로 전망 좋다시던 오두막에
철컥 자물쇠를 걸고 나서며 무슨 생각 하셨을까요.
 
이렇게 여기 앉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툴툴거리는 유모차 앞세우고
휘~ 휘이 숨비소리 같은 호흡으로
보고 싶은 당신이 오실까요?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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