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해외명산 트레킹을 위해 중국에 있는데 국내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항의 유일한 특급호텔인 (구)시그너스호텔을 새롭게 인수해 리모델링하고 있는 업체의 회장이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전화였다.

귀국 후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갔더니 회장과 사장, 총지배인 등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안 사실은 호텔의 새로운 경영주인 회장이 필자도 익히 알고 있는 10여년전 외환위기 직전까지 국내 30대 재벌그룹에 속했던 나산그룹 안병균 회장이었다.

사실, 이 호텔은 52만 인구의 포항시를 대표하는 유일한 특급호텔이었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건설 초기부터 오랜 세월동안 골조만 세운 채 흉물처럼 있다가 서울에 있는 지역출신 재력가가 야심 차게 고향을 위해 거액을 투자해 시작했었다.

그러나 방만한 경영과 경기침체 등으로 몇 해 못 가 막대한 손실만 입고 손을 뗀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경영주체가 바뀌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포항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지 오래된 곳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특급호텔이 몇 년째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수많은 대형 행사나 이벤트가 예식장이나 시청사, 예술회관 등에서 치러지고 심지어 지역을 떠나 인근 도시에서 포항지역 행사를 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빈번했다.

그동안 갖가지 호텔 건립 계획이 무성했지만 무슨 사정인지 제대로 성사되는 게 없던 차에 있는 호텔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평소 생각에 딱 들어맞게 안 회장이 우리 지역에 투자를 한다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날 안 회장은 3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새로운 개념의 호텔로 탈바꿈시키겠다며 필자를 감동시켰다.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이런 거물급 경영인이 포항지역 최대 난관 중의 하나인 특급호텔사업에 참여한다는데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필자가 금융계통에 종사했고 시그너스호텔로 인해 직·간접으로 골머리를 싸맨 경험이 있어 포항시민이라면 이 호텔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데다 금융권에서도 이 호텔에 선뜻 금융지원을 하지 않는 뜨거운 감자인데 대기업 총수를 했던 사람이 투자한다니 더욱더 의아했다.

그러나 “포항의 발전 가능성에 투자한다” 란 안 회장의 말에 이런 의문이 금방 풀렸다.

선진 일류도시 포항을 만들겠다는 박승호 시장의 야심 찬 계획이 외지 투자자들의 의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환 동해 중심도시로 뻗어나갈 포항의 미래가 투자가치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포항의 가치에 투자하는 외지 투자 기업가들로 우리 지역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에 청신호를 보내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닌가.

안 회장의 말을 듣고 지난 5월,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들어선 강림중공업 포항공장 준공식에서 이 회사 회장의 인사말이 떠올랐다.

“포항의 발전 가능성이 대단히 밝고, 시장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기업 유치 열정이 매우 높아 이곳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안 회장은 이날 호텔사업을 위한 금전적인 투자는 아낌없이 하는데 향후 지역 사회와의 소통(疏通)과 공생(共生)을 위한 가교역(架橋役)을 해 줄 지역인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필자에게 사외이사(社外理事)를 맡아 호텔 경영 주체들의 지역정서 이해와 지역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호텔 문화를 정착시켜 주는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외이사의 본뜻은 경영 의사결정이나 경영진의 업무집행에 대한 감독,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권한은 대기업 이외의 중소기업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포항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기업인들이 지역에 투자하고자 할 때는 포항의 여건, 환경, 정서 등을 몰라 주저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막상 투자 결정을 해도 걸림돌이 하나 둘이 아니다.

포항시가 기업 유치를 위해 모든 편의와 협조를 아끼지 않아도 생각만큼 자본가들이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번 필로스호텔의 뿐만 아니라 지역에 유치되는 기업들이 지역인사의 사외이사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면 기업유치 성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오래전부터 지역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포스코 등 대기업에도 지역출신 사외이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지역사회와 곧바로 소통하며 사내이사들의 경영에 지역발전과 상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고 지역과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 보여 진다.

법적으로 사외이사를 두어야 하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필요치 않는 기업에도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도 지역인사 사외이사제가 바람직할 것 같다.

이것 또한 상생(相生)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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