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까 에서부터, 당장 무엇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한번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 소위 고민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고민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사고가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 결국에 가서는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그 순간에 난 새로운 생각과 확신을 얻는다.

며칠 전에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전임교수가 된 도쿄대학 강상중 교수의 저서 `고민하는 힘`을 읽었다. 참 좋은 책이다. 요는 진지하게 고민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에 인생을 건 20대부터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해왔다. 대학시절인 1980년대 초도 그리 편안한 사회는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대학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졸업이 다가오면, 취업 준비로 타자나 부기 자격증 취득하느라 학원을 다녀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 준비로 자격증 획득에 신경을 쓰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졸업 후 일본 유학 갈 예정으로 취직 준비는 뒷전으로 졸업논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졸업논문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론이었다. 강상중 교수가 `고민하는 힘`에 거론한 작가다. 그래서 더욱더 `고민하는 힘`에 공감이 간다.

젊은 시절, 최대의 고민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몇 날 며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철학서 등을 알지도 못하면서 읽고 또 읽곤 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나름대로 삶의 가치체계를 정립했다고는 하지만,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여러 가지 모순이나 문제점이 어딘가 중간 단계에서 완화된다거나 여과되지 않고 개인에게 공격적으로 작용을 할 때가 많다. 또한 변화무쌍한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간을 원하면서도 개개인에 대해서는 과도하리만치 일관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홍수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 정보들. 정보에 둔하다거나 정보에 민감하지 않으면 뭔가 이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하기도 한다.

많이 알고 있다거나 정보통은 지성(知性)과는 별개의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성의 작용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우(know)` 가 아니라 `씽크(think)`인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지적(知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야말로 지성(知性)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새로운 발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민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민만 하면 뭐하냐 하겠지만,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분명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민의 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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