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까지만 해도 명사십리로 명성이 자자했던 포항 송도해수욕장.

수만 평의 울창한 송림을 뒤에 두고 펼쳐진 은빛 모래밭은 수많은 피서객들을 불러 모으며 동해안의 명소로 각광을 받았었다.

하지만 폭 60여m에 길이가 무려 2km에 가까웠던 은빛 모래밭은 산업화에 밀리면서 그 명성과 기능을 상실하고 폐허가 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여기가 해수욕장이었다는 흔적으로 바다 가운데의 다이빙대와 입구에 두 팔을 벌리고 홀로 서 있는 `평화의 여상` 뿐이다.

젊은 시절 송도해수욕장에서 낭만을 즐겼던 40대 이후의 관광객들이 간간히 찾고 있지만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허탈하게 발길을 돌릴 때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안타까운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흔적뿐인 송도해수욕장은 요즘 바다를 매립하여 해안도로를 만들고 있으며, 도로가 완공되면 정부의 연안정비사업의 일환으로 380억원의 예산을 들여 해수욕장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며 송도해수욕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아 온 그 `평화의 여상`도 도로의 개설과 함께 곧 헐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포항 최초의 상징물이었을 법한 비키니 차림의 여인상은 당시만 해도 화제가 되었고 송도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은 여인상을 배경으로 한 번쯤은 기념촬영을 했을 것이고 추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세련된 디자인의 상징물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비키니 차림의 여인상은 송도해수욕장의 명물이었으며 포항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평화의 여상` 건립과 관련된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그동안 무관심 속에 갈라지고 뜯겨진 채 방치되어 있다.

최근 필자가 시멘트로 덧 씌워지고 페인트로 가려진 부분을 뜯어내면서 당시 포항시의 시정목표와 건립연도 정도를 알아낸 것이 전부였다.

동판으로 제작된 내용에는 `포항 시정목표` 라는 타이틀 아래 “1, 명랑한 문화도시 1, 건전한 항만도시 1, 풍요한 공업도시 1968년 7월 12일 포항시장”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40여 년 전 포항시가 추구했던 소박한(?) 시정목표는 현재와 비교했을 때 또 다른 의미가 있으며 포항의 관광산업과 함께 한 상징물로써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신상이 헐린다는 소식을 접한 전국의 수집가들이 찾아와 매입을 원하는 것도 상징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포항시의 해안도로 설계내역에는 보존과 이전이 아닌, 철거를 전제로 한 폐기물처리 비용만 산정되어 있다니 너무도 안일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수십억 원을 들여 곳곳에 상징물과 조형물을 만들어 도시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항시민과 포항을 다녀간 수많은 관광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상징물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송도의 `평화의 여상`은 포항시 승격 60주년에 즈음하여 타임캡슐에 넣을 그 어떤 자료 이상의 상징성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문화재와 같은 역사적 가치는 없다고 할지라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당연히 보존해야 하며 `평화의 여상`은 보존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송도동 주민과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가 느끼는 바와 같이 포항을 대표하는 역사물과 상징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동안 산업화에 밀려 부서지고 파괴되어 오직 현재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경험하였듯이 과거를 버리고 현재를 살 수 없으며 미래 또한, 예측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시민의 애환과 송도를 기억하는 수백만 피서객의 가슴에 남아 있을 여인상의 보존을 통하여 파괴된 과거를 돌아보고 송도해수욕장의 복원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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