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날 개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나에게 말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엘레지 몰라요? 개 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 오탁번 시집 `벙어리장갑`(문학사상사·2002)

무더운 여름 날씨다. 삼계탕이니 보신탕 같은 영양식이 절로 생각나는 철이다. 어느 말복날, 오탁번 시인이 충북 제천의 고향 마을에 내려가 동네 사람들과 같이 가마솥에 개 한 마리를 푹 삼고 술추렴을 한 모양이다. 그 체험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 재미난 시 `엘레지`이다. 구신(狗腎 )이라는 개의 자지(좆)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 `엘레지`라는 걸 시인이 몰랐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과 반성이 이 시의 창작 모티프가 되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엘레지 몰라요? 개 자지 몰라요?”에서 보는 농부의 거침없는 말과 대학 교수의 당황한 속내가 참 해학적이다. 여기서 시적 화자인시인은 놀라면서도 절망한다. 비가(悲歌) 혹은 만가(輓歌)를 뜻하는 외래어 `엘레지(elegie)`는 알고 있으면서도 순우리말인 `엘레지`를 몰랐다니. 시골 농부도 알고 있는 것을 그것도 30년 동안이나 일류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쳤다는 교수가 몰랐다니. 이 놀라움과 반성은 “그날 밤 꿈에서” “가마솥에서 익는/나의 엘레지를 보”는 것으로 변용된다. 오탁번의 시는 재미있다. 위 시 `엘레지`를 비롯하여 `앞으로는 안 하고 뒤로 했다`라는 시속의 남녀 음담을 비련의 가족사로 환치시킨 `굴비`, “엄마가 동생공장공장장”이라는 동시 `엄마` 등등의 시들은 해학과 천진난만한 동심의 빛으로 그려져 있다. 무더운 여름날 읽은 오탁번의 시 `엘레지`, 보신탕 한 그릇 족히 먹은 듯하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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