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 빌`은 일반적인 시각으론 이제까지 보아온 익숙한 다른 영화들의 스타일에서는 느끼지 못한 너무도 이질적인 영화다.(물론 쿠엔틴 타란티노로선 아주 익숙한 스타일이지만) 처음부터 중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순서는 아예 고려가 안 된 것처럼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 영화는 그 순서의 파괴에 표한 매력을 풍기며 각각의 에피소드와 챕터들로 영화를 구성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관객들에겐 지금부터 벌어질 재미난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즐기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의 첫 장면 더 브라이드가 살해되는 장면에 이어지는 더 브라이드의 순서상 두 번째 제거 대상인 버니타 그린과의 대결, 그리곤 멕시코의 결혼식장의 더 브라이드의 참혹한 결혼식 살해현장에서 곧장 병원에 누워있는 그녀와 그녀를 암살하려는 엘 드라이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거스른다.

코마에서 깨어나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와 오웬 이시이의 에피소드 그리고 청엽정에서의 마지막 혈투는 영화에서 사건이 발생한 순서와는 전혀 상관없이, 회상의 주체가 있던 없던, 주인공의 현 상황과 그녀 앞에 펼쳐질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하듯 각각의 에피소드를 형성하며 감독이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늘어놓은 듯 부산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렇게 아무렇게 늘어놓은 듯한 에피소드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묘한 힘을 발휘하며 흥미를 고조시킨다.

약에서 중 그리고 강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액션의 잔인함 또는 참혹함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영화의 긴장감은 영화의 재미를 차츰 아주 조용하게 증가시키곤 마지막 청엽정의 결투에서 그것을 폭발시킨다.

그런 미묘한 영화의 흐름은 관객을 영화에 더욱 집중시키고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보이며 더 브라이드와 오렌 이시이의 숙명의 대결 이후에 이어질 나머지 복수극을 담은 `킬 빌 : Vol.2`에 대한 기대까지도 증폭시킨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챕터를 이루어 그녀가 죽여야 할 또는 복수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아주 친절하게 짚어주고 설명해 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주고 동시에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영화 `킬 빌`은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선혈이 낭자하는 피와 살인, 복수로 점철된 잔인한 액션 느와르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영화들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폭력이 기존의 타란티노 영화조차도 무색하게 할 무자비함과 잔인함이 존재하는 영화이지만 이상하게 `킬 빌`에서 느껴지는 잔인함은 낯설다기 보다는 익숙하단 느낌이다.

요즘 자주 접하게 되는 한·중·일의 무협, 사무라이 극이나 일본의 장편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련의 성인만화에서 익히 접했던 일련의 잔인한 장면이 그저 형상화되어 있을 뿐 기존에 접했던 그 무엇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은 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이 거부감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액션이 기존의 활자나 그림매체에서 보아왔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영상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그 폭력이 잔인함이 타란티노 스타일로 경쾌하고 발칙하게 때론 흥겹(?)게 연출되어짐으로써 무자비함과 비정함으로 점철된 피의 복수극임에도 영화는 화려함과 흥미로움만 느껴진다.

적절한 와이어 액션과 엄격한 사무라이 검법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액션 스타일은 총기나 단검으로 보여지던 기존의 폭력물들과는 엄격한 차별을 이루고 영화를 더욱 독특하고 대중적이며 세련된 느낌으로 한층 재미있고 신기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도와준다.

더욱 신선하고 세련되게 단장된 타란티노식 영화문법은 관객을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