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지 은영일고 1
석병양로원은 내가 영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세 번째 봉사활동을 하게 될 장소이다. 처음엔 양로원에서 봉사한다는 소릴 듣고 되게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도구와 구룡포를 지나 바다건너 산 건너 경치 좋은 곳에 다다랐다.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건물에 도착하였고 인상 좋으신 남자 선생님 한분이 우리 모두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몇몇이서 모둠을 짜서 활동하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마른걸레와 젖은걸레를 들고 양로원의 모든 유리와 창문을 찾아 닦으러 다녔다.

우리가 온걸 알고 편찮으신데도 나와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인사를 할 때마다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기도 하셨다. 그럴 때 마다 “영일고등학교에서 왔어요.”하면서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한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였는데 할아버지가 대답도 안해주시고 다른곳을 쳐다보고 계시길래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여 인사하기도 하였다. 몇 번을 하고나서야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때 빨리 깨닫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할아버지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걸레로 유리와 창을 닦아나갈 때 마다 내가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유리에 낀 먼지 하나하나가 말끔히 사라질 때 마다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끝마치고 잠시 쉬려고 복도에 앉아있었다. 옆 창 안으로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친구 두 명을 데리고 할머니들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부터 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각자 할머니 한 분에게 붙어 안마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처음 나와 얘기를 나눴던 할머니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할머니께 “할머니 제가 안마해드릴게요.” 하자 누워계시던 할머니가 나에게 눈을 마주치시며 힘들게 몸을 일으키시곤 안 펴지는 무릎을 억지로 펴시는 모습이 아직 내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내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모를 찡 한게 올라왔다. 할머니 무릎을 나도 같이 펴드렸고 할머니가 바지를 걷어 올리시자 무릎에는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 할머니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 라고 수 십 번은 넘게 말 한것 같았다.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영덕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도 지금 무릎이 많이 편찮으신데 하고 생각났다. 봉사활동 다녀와서 꼭 안부전화를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여태 해드린것도 없고 불효 한 거 같아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 때 만큼은 내가 할머니의 손녀처럼 정성껏 안마해드렸다. 할머니에게 안마해드리면서 할머니와 몇 마디 짧은 대화를 하였다. 할머니와 했던 대화 중 에서 “영일고등학교 학생들이 참 자주 오네~ ” 하는 소리에 나는 너무 흐뭇했다. 그 때 너무 우리 고등학교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할머니들께서 지루해 하실까봐 노래를 불렀다. 야영을 갔다 온 후라서 목이 많이 아프고 따가웠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열심히 힘껏 불렀다. 처음엔 뭘 부를까 망설이다가 노래 하다가 춤까지 추면서 열심히 웃기게 해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들께서 박수를 치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를 본 나는 더 힘에 입어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서 반 아이들과 모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곳을 찾아가 순회공연을 하였다. 반 친구들과 다 같이 트로트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때 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치 손녀를 보듯이 대해주셨다. 몇 분이 흐른 후 다른 건물로 모두 이동하여 큰 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아계신 곳 앞에 모두 모여 앉아서 장기자랑을 하였다. 그 때 만큼은 같은 반 친구지만 얼마나 이뻐보이고 착해보이던지 모르겠다.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석병 양로원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양로원이라는 생각 하나로 `많이 힘들고 고된 하루가 될 것 같다` 고 생각한 내가 참 부끄럽다. 한 달에 한 번 반 친구들도 단체로 오는 것 이외에도 가족들과 함께 양로원을 찾아 일손을 돕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주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뿌듯한 하루였고, 부모님에게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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