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열두 개 있는데 그 중 일곱 개를 먹었다. 남은 것은 몇 개일까?“

영구가 벌떡 일어섰다.

“일곱 개요.”

“왜 일곱 개가 되지요?”

평소에 좀 엉뚱한 면이 있는 영구에게 되물었다.

“우리 엄마가 늘 먹는 것이 남는 거라고 했어요. 사과를 일곱 개 먹었으니까 당연히 일곱 개가 남는 거지요.”

수학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엉뚱한 답이지만 영구가 말한 답은 그럴듯하다.

창의의 세계에서는 정답만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때로는 엉뚱한 발상에서 기발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창의 세계의 특성이다.

선생님이 이런 문제를 제시했다.

`나는 준다`의 미래형은 무엇인가? 선생님이 생각한 답은 `나는 줄 것이다`였다. 그런데 영구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받는다.` 이 답은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세상사를 통찰한 수준에서는 맞는 말이다. 주면 언젠가는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영구는 입체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아이다. 입체적 사고란 좀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12-7=`에서 `5`라고 답하는 것은 마침표(.)와 같이 닫힌 답이다.

그러나 영구가 제시한 답 `7`은 다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라는 물음표(?)를 던진 다음 `아하!`라는 느낌표(!)를 갖게 하는 열린 답이다.

단순히 마침표에서 끝나지 않고 물음표와 느낌표로 이어지게 하는 사고가 바로 입체적 사고이다.

입체적 사고를 위해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 보다는 외워서 아는 지식이 많다.

이렇게 하면 `무엇`에 대한 것은 많이 알지만 `어떻게`에 대한 것은 잘 모른다.

여기서 `무엇`에 대해 아는 것, 즉 외워서 아는 것이 단순한 `알기`라면, `어떻게`에 대해 아는 것, 즉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이해`이다.

어떤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며, `어떻게`를 모르면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다.

결국 진정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이 생명인 창의성 계발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알기` 위주로 흐르는 예를 TV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

`장학퀴즈` `도전 골든벨` 등과 같은 `어떻게` 보다는 `무엇`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들은 진정한 `이해` 보다는 `알기` 수준에 머물게 한다.

`알기`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 루트번스타인이 `생각의 탄생`에서 제시한 `관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찰훈련은 그 동안 학교 교육에서 중점을 두었던 `생각나기`의 기억훈련에서 벗어나 `생각하기`의 고등 사고훈련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학교에서 3학년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해 보았다. 포장이 되어 있는 일반적인 껌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20분 동안 관찰한 내용을 최대한 많이 적어보게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20가지 이상 쓰지 못했다. 그런데 관찰을 눈으로만 하지 말고 오감을 모두 사용해 보라고 했더니 50가지 정도를 썼다.

이렇게 관찰 훈련이 잘 되면 나중에는 같아 보이는 모양, 색깔, 맛, 향기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찾아낼 수 있다.

차이를 느끼고 발견할 수 있어야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모든 분야에서 남다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힘이 바로 창의력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한쪽 면으로만 보지 말고 여러 면에서 보고 생각하도록 입체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창의력 훈련의 핵심이다.

Creat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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