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사과도 못하고 근심만 돌돌 굴리다가
도무지 꼼수로는 헤어날 길 없어 종일 바느질을 했네요.
입 꼭 다물고 돋보기 끼고 뚫어져라 한 곳만을 바라보며
왼손으론 천을 잡고 오른손으론 바늘을 잡고
한 땀 한 땀 넣었다 빼고 다시 뒤로 찔러 앞으로 빼는 동안
촘촘하게 길을 내는 실의 자국들.
그렇게 커다란 방석 하나를 만들어 갑니다.
도톰하게 속을 채운 뒤
먹물 염색한 천을 테두리에 두르고
쪽물 염색한 천을 가운데 대고
붉은 실로 한 바퀴 흰 실로 한 바퀴 그렇게 깁습니다.
행여 앉는 자리 속이 밀릴까봐
곱하기 모양으로 다시 또 길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 돌려가며 네모를 자꾸 그립니다.
한 줄로는 모자라 또 한 줄 곁에 내니
어느새 톡톡하게 자리를 잡는 귀퉁이가
제법 그럴듯한 방석 매무새로 고개를 듭니다.
이 가느다란 실을 끌고 가는 바늘 하나도
조금만 비껴 지르면 빼또롬해지는 길 선명한데
하물며 함부로 말하고 생각 없이 행동한 나의 모습은
얼마나 흐트러진 자국을 주변에 남겼을까요.
함께 기워가는 세상일 텐데
삐딱하게 돌아앉는 나 하나로 인해
잠시나마 흔들린 우리들 질서에 대해 생각합니다.
올려놓은 음반이 서너 번이나 반복해서 돌아가는 동안
바늘을 쥔 엄지와 검지가 아파 오는 동안
솜씨 없는 바느질로 다시 그대를 생각하는 동안
말없이 말을 건 나와 내가 잘 화해하고 있더군요.
참나무 좌탁 아래 놓아둘까?
강돌 위에 깔고 앉아 강을 바라볼까? 그러다가
아니야, 그대에게 주어야지 하고는
만져보며 또 만져보며 가뿐해진 마음을 부지런히 깁습니다.